첫날은 나름 열심히 정리를 했는데, 그다음부터는 피곤한데다 가끔씩 다른 일로 신경이 쓰여서 흐름을 놓치기도 하여 정리를 하지 않았다. 여기서 '다른 일'은 학회 진행에 관련된 일들이었다. 그래도 하여간 잘 끝났고, 내가 맡았던 역할도 나름 신경써서 했고 결과(?)도 좋아서 기분이 좋다.

우선 Daido 교수께 내가 생각한 걸(바로 이전 포스팅 참고) 말씀드렸더니 좋은 지적이라고 하시면서도 그분의 연구 결과를 이해하는데는 적합하지 않다고 하셨다. 비활성 떨개들의 비율에 따라 비활성 떨개와 활성 떨개가 서로에게 미치는 실질 결합세기의 비대칭이 비대칭적인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며 그것만으로도 그 결과를 이해하는데 충분하다는 것이었다. 오케.

외국인 발표자의 내용만 간단히 정리해본다. 한국인들의 발표는 이미 다른 자리에서 들어서 알고 있는 경우들이 있기도 하고 해서... (그렇다고 해도 매우 제멋대로인 차별;;이라는.)

* 둘째날

+ Majumdar: 끝값통계(extreme value statistics; EVS; 역시 내멋대로 옮김)란 어떤 확률분포의 끝값들이 어떻게 분포하는가에 관한 얘기이다. 그런데 이 주제에 접근하는 방식이 재미있었는데 어떤 자연수 E를 분할하는 방법의 수로 정의된 함수 Ω(E)에서 시작하는 거였다. 이를테면 4는 4, 3+1, 2+2, 2+1+1, 1+1+1+1처럼 5가지로 분할할 수 있으므로 Ω(4)=5이다. 또한 각 분할에서 몇 개로 분할했느냐를 N이라고 하면 Ω(E,N)이라는 함수를 정의할 수 있다. 처음에는 왜 여기에 Ω,E,N이라는 기호를 쓰나 했는데 뒤로 갈수록 통계물리와 자연스럽게 이어지면서 이들 각각이 결국 상태밀도(density of states), 에너지, 입자의 개수로 해석된다. 오홍. 하여간 기존의 Gumbel, Frechet, Weibull 분포로 알려져 있던 것들을 하나의 틀 안에서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 Chate: 아마도 수천 마리 정도 되는 새들이 하늘에서 밀가루 반죽하듯이 모였다가 흩어지는 동영상으로 시작된 발표였는데 새들을 간단한 국소적인 규칙만을 따르는 행위자로 모형화하여 처음에는 균일한 밀도로 퍼져 있던 새들이 국소적인 상호작용에 의해 거시적인 패턴을 만들어내는 걸 보여준다. 이런 연구는 예전부터 많이 해왔던 것 같기는 한데, 하여간 통계물리를 하시는 분이다보니 여기서 나타나는 상전이에 대한 연구가 주된 내용이었다. 모형의 기본적인 요소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지만 하여간 경우에 따라 1차 상전이, KT 상전이가 관찰된다던가...

+ Kurchan: 양자 담금질을 이용하여 유리(glass)에 관한 문제를 풀어보자는 건데 처음에 조금 따라가다가 흐름을 놓쳤다. 패쓰;;;

+ Zeng: 신진대사 연결망을 불(Boolean) 연결망을 이용하여 모형화할 때 나타나는 동역학적 성질에 대한 연구가 있었는데 이 분은 주어진 동역학적 성질로부터 그러한 성질이 나타나는 신진대사 연결망을 재구성(역구성?)하는 문제를 푸는 걸 발표했다. 일단 문제설정이 깔끔했고 그걸 푸는 것도 좀 무지막지해보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10^55 가지의 가능성을 불과 수백개로 줄일 수 있다고 하니 하여간 재미있어 보였다.

+ Tang: 나이에 비해 엄청 젊어보이는 분이었다. 역시 신진대사 연결망에 관한 연구를 발표하셨는데 나에게는 암호와도 같은 신진대사 관여 물질들의, 역시 복잡해보이는 연결망의 그림은 눈을 어디에 둬야할지 모르게 만들었다. 좀더 자세히 알고 익숙해지면 재미있을 법도 한데 아직까지는 먼 분야.

* 셋째날

+ Kurths: 예전에 뉴런모형을 연구했던 친구가 논문 쓸 때 좀 거들어주고 토론 좀 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즈음 이름을 알게 된 사람이었는데 이번에 첨 봤다. 이 분 발표 직전에 내 옆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이 날 오후 시내구경(city tour)을 갈 계획이어서 나한테 오늘 날씨 어떨 것 같냐고 물어보는데(그날 아침엔 비가 옴) 옆 자리의 lshlj님이 오후에는 비가 안 올 거라는 일기예보가 있었다고 했고 내가 날씨 예측하는 건 힘든 일이라고 했더니 그분이 "especially future"라고 하여 크게 웃었... 그런데 발표 첫 슬라이드에 나온 이분의 소속 중 하나가 '기후영향연구소'였다는.

하여간 연결망 위에서 나타나는 동기화라든지 인지과학자와 신경과학자들이 얻은 뇌신경 데이터로 연결망을 만들어서 분석하기도 하고 그런 일들을 많이 해온 것 같다.

* 넷째날(마지막날)

+ den Nijs: 통계물리 '모형'들을 주로 연구해온 걸로 아는데, 이번에는 인간 뇌의 ECoG 측정 데이터에서 나타나는 거듭제곱 꼴에 관한 발표를 했다. 일단 영어가 알아듣기 힘들었고 그렇다보니 측정결과에 대한 설명도 무슨 얘기인지 못알아 들었다. 그림들과 그래프만 두고 보면 거듭제곱 지수가 4.0이라는 것, 그리고 두 개의 거듭제곱 영역이 나타나는데 그걸 설명...이라기보다는 기술할 수 있는 식을 제시했다는 것 정도.

+ Dhar: 점심식사를 하고나서 마지막 발표였다. 이미 떠날 사람은 떠난 시간. 모래더미 모형에서 나타나는 예쁜 무늬를 분석하는 연구를 발표했다. 예쁜 무늬를 잘 들여다보면 이러저러한 걸 알 수 있다고 할 때까지만 해도 '예쁘구나'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걸 이리저리 뒤집고 분석하면서부터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더라. 그 과정에서 리만 표면을 격자로 만들기도 하고 등등. 작년 제노바에서 열린 학회에서도 일부러 Dhar의 발표를 찾아 들었는데 이번에는 인사도 하고 이래저래 얘기를 많이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

이번이 세번째 학회인데 2년 전에 두번째가 열렸고 그때도 참가했더랬다. 그 2년 전, 어렴풋한 기억이 새록새록 나는 것 같다가도 희미한 연기가 되어 사라지곤 한다. (뭔 소리냐;;;) 그래서 지난 2년 동안 나는 얼마나 컸는지 되돌아보는 기회가 되었다. (물론 키는 1센티미터도 안 컸다.) 늘 조금 늦은감이 들지만, 그래도 이제 시작이라는 느낌. 갈 길이 구만리요,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