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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 독일 학회에 다녀오면서 면세점에서 싼 값에 팔길래 사갖고 온 DVD다. 겉비닐을 이제서야 뜯어보았다. 두어번 봤던 영화라 선물로 샀던 것이고 막상 누군가에게 주려니 마땅치 않아서 서랍에 넣어두었더랬다. 미투데이 친구가 링크해놓은 블로그에 갔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서랍에서 꺼내 겉비닐을 뜯고 보기 시작했다. 봤던 것인데 앞부분밖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억력이 사라지고 있구나.

어렸을 때부터 밤하늘의 별을 보며 과학자의 꿈을 키웠던 엘리 애러웨이(조디 포스터)는 외계의 지적 생명체를 찾고 있는 과학자다. 납세자들은 그러한 불확실한 일을 원하지 않는다는 주장이 힘을 얻어 계획이 무산될 뻔하기도 하고, 이 프로젝트의 정당성을 알리기 위한 자리에서 공상과학일 뿐이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결국 누군가의 도움으로 연구는 계속되고 마침내 외계로부터의 신호를 검출해낸다. 마침내 외계(베가)의 지적 생명체가 보내온 설계도에 따른 거대한 수송기가 완성되고 엘리는 외계의 지적 생명체와의 조우를 위한 여행을 시작한다...

꿈이 있다고해서 그대로 실현되지는 않는다. 엘리의 프로젝트를 중단시켰으면서도 엘리의 연구성과를 가로채어 명성을 누리려는 상사에 대해 엘리가 무력할 수밖에 없는 모습이 그려진다. 또한 신을 믿지 않는 엘리는 신을 믿는 목사이자 정부자문위원(?)인 조스(매튜 맥커너히)와 '믿음'의 문제를 두고 논쟁을 벌인다. 결국 어떤 형태로든 신을 믿는 95%의 인류를 무신론자가 대표할 수 없다는 이유로 엘리는 여행의 기회를 잃어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돈많은 미지의 인물 해든스에 의해 여행의 기회가 다시 찾아오고...

칼 세이건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 <콘택트>는 10년 전인 1997년에 나왔다. 10년 전... 그 당시의 나는 과학기술의 부정적인 면에 대해 비판하기를 좋아했고 과학 자체보다 과학기술과 사회와의 관계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세상의 현실에 눈뜨면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은 어떠한지, 사람들이 모두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했다. 그러다 봄에 성적이 떨어졌고, 가을에는 물리를 잘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수업을 열심히 듣기도 했다.

하지만 뭘 하든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언제나 회의가 멈추지 않았다. 대체 이 공부를 왜 하고 있는지 무엇을 위해 하는지... 나의 질문들에는 정형화된 모범답안이 있었지만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나만의 답을 찾은 것 같기도 하지만 나는 또 그곳에서 벗어나려고 했던 것 같다...

유독 말줄임표가 많구나. 영화를 보면서, 보고 나서 다시 묻는다. '너의 꿈은 뭐니?' 예전에 종종 마음이 통할 것 같은 사람들에게 했던 질문이다. 요즘은 이런 질문을 하는 것조차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래서 너의 꿈은 뭐니? 나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난 생각했다. 밤하늘의 별들 저 너머에 있는 외계의 지적 생명체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내 눈에 보이는 '인간'이라는 지적 생명체들에 대해 알고 싶다고. 물론 나는 아직 모래알을 갖고 장난치는 아이에 불과하다는 것을 잘 안다. 게다가 게으르기까지 하다! 하지만 내가 여전히 어떠한 꿈을 가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베가인이 엘리에게 했던 말처럼 조금씩 나아가는 것이라고(small moves) 했던 것을 안다.

지금 이 컴퓨터의 배경화면은 중학교때 물상 교과서 앞의 화보에 실려 있던 플레이아데스 성단 사진이다. 당시에 나를 설레게 했고 상상력을 자극했던 그 사진이다. 텅 빈 공간을 가로질러 무한의 속도로 날아가고 싶었던 그 사진. 상대성이론을 알면서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말이다. 늘 컴퓨터 앞에 붙어있으면서도, 하루에도 몇번씩 이 배경화면을 보면서도 그저 뭔가 퍼렇고 반짝거리는 것 같은 점들로만 인식하게 되었다. 열 다섯 소년의 마음으로 돌아가서(물론 불가능하다) 다시 마음 설렐 수는 없는 걸까. 아름다운 금성이 온통 인간에게는 유해한 가스로 뒤덮여 있다는 것을 알고나서도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은(물론 포기할 이유는 없다;;) 엘리 애러웨이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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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owardedin.com/photos/film/m4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