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술자리에서 게임이론에 관한 얘기가 잠시 나왔다. 이에 대한 비판으로 내쉬 평형이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할 수 있는가, 다이나믹하게 변하는 상황에서 그러한 개념틀이 쓸모 있겠는가 하는 것이었다. 나는 경제학은 잘 몰라도 게임이론은 조금 공부한 적이 있어서 '다이나믹 내쉬 평형'을 정의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고 대화는 그즈음에서 다른 주제로 넘어갔다.

인간과 사회현상에 관한 과학에 대해 불신하는 분위기가 있다. 사실 그러한 현상을 이해하고자 하는 목적과 과학적 방법론 등을 불신한다기보다는 그것들을 자신의 정치적/경제적 이득을 위해 오용/남용하는 사람들에 대한 불신일 것이다.라고 추측해본다. 그렇게 잘못될 가능성이 있을수록 연구자들은 더욱 철저해야 하고 또한 자신들의 연구가 나쁘게 이용당하지 않도록 연구자들 스스로 힘을 키워야 한다.

이런 흐름에서 사회물리학도 자유롭지 못하다. 사회생물학이 겪었던 과학과 윤리, 사회와의 관계와 같은 문제들을 겪지 말라는 법이 없다. 걱정은 되지만 그렇다고 구더기 무서워서 장을 담그지 말라는 법도 없다. 하지만 역시 하나하나 철저해지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이다.

오히려 더 중요한 문제는 사회현상에 대한 물리학적 방법론이 과연 타당한가라는 질문이다. 게임이론을 보자. 단 몇 가지 가정만으로도 이기적 개인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딜레마를 명쾌하게 설명해준다. 동시에 그러한 사회적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 또는 이기적 개인을 가정하고서도 여전히 이타적/호혜적 행위가 나타나는 현상에 대한 이해를 위한 게임이론이 계속 발전되고 있다.

게임이론 하나가 인간세상의 모든 현상을 모두 온전히 설명해준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복잡한 현상으로부터 가장 간단하고 명쾌한 설명틀을 추상화해냈다는 것만큼은 사실이다. 그리고 게임이론의 특수한 경우가 비평형 통계물리학에서 연구되어온 모형과 같은 보편성 분류에 속한다는 주장도 연구되어왔다. 또한 진화적 게임이론의 형식(formalism)이 양자역학의 그것과 대응되며 양자역학의 수학적 방법론들이 진화적 게임이론을 연구하는데도 쓰일 수 있다는 연구들이 최근에도 발표되고 있다.

이런 분야로 할 수 있는 연구의 지평은 계속 넓어질 것이다. 다만 사회과학에 대한 배경과 그 흐름을 이해하는 사람이 이러한 방법론을 도입하는 경우와 그런 이해 없이 물리학의 방법론을 기계적으로 사회현상으로 해석하고자 하는 경우는 비록 그 연구 결과가 비슷할지 몰라도 차이가 있다. 이를테면 극단적 추상주의를 표방하는 미술가가 그린 검은 사각형과 어린 아이가 아무 생각 없이(이건 확실치는 않다) 그린 검은 사각형은 매우 다르다. 같은 일을 해도 그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잘못된 해석을 내릴 가능성이 더 높다.

어쨌든 그런 의미를 잘 모르는 나로서는 말 한마디라도 조심해서 해야 하고 또 배우려고 노력해야 한다. 자칫 사기꾼이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dave25님이 알려주신 이정모 교수님의 글 "과학도로서의 심리학도의 자세"에는 과학도가 지녀야할 자세와 태도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읽으면서 든 생각은 단지 내가 어렵다고 회피하다보니 여기까지 온 것은 아닌가 하는 반성이었다. 어렵더라도 하나씩 차근차근 공부할 생각은 안하고 눈 앞에 보이는 재미만 좇아 쉬운 길만 걸어왔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그 값을 이제서야 치루고 있고 지금도 반성하며 공부하려고 노력한다. 또한 겸손해져야 한다. 인류의 지적 구조물을 만드는 과정은 몇몇 명성 있는 과학자들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수없이 많은 이름 없는 연구자들, 힘들고 어렵지만 그 흐름의 작은 고리가 되어준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단지 겉멋이 들어 이걸 하겠다고 하는 것은 아닌가... (멋이 있기는 한건가;;;)

아직 나는 어두운 길을 희미한 불빛에 기대어 한걸음씩 걷는 중이다. 아직 모른다. 뭐가 어떻게 될지, 잘 가고 있는 건지, 그게 아닌 건지, 답은 정해져 있지 않은 건지, 언제쯤 한계에 부딪힐 것인지 등등. 이러한 궁금증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것들이 있다. 어렵다고 돌아가려 하지 말 것. 이러한 고민들을 놓지 말고 겸손하고 진지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