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에 쓴 '흡수상전이에 관한 공부'라는 글 이후 7달이나 지났구나. 그동안 이쪽으로 공부를 하지 않은 건 아닌데 따로 정리할 여유가 없었다. 요즘 조금씩 보는 논문은 흡수상전이에 관해 정리해놓은 힌릭센(Hinrichsen)의 리뷰 논문이다: H. Hinrichsen, Advances in Physics 49, 815-958 (2000).

위에 링크한 글에 'DP 추측(conjecture)'을 옮겨놓은 부분이 있다. 다시 쓰면, 가까운 거리 상호작용을 하고, 유일한 흡수상태로의 연속상전이를 하며, 추가적인 대칭성이 없는 시스템은 DP(방향성 있는 스미기; directed percolation)와 같은 보편성 분류에 포함될 거라는 거다. 이 세 가지 조건이 각각 깨지면 DP가 아닌 다른 보편성 분류가 나타날 거냐?가 중요한 이슈가 된다. 하나씩 살펴보자.

1) 가까운 거리 상호작용 조건이 깨질 때

여러번 소개한 접촉 과정(A → 0, A → 2A)을 보자. 격자 위의 각 자리는 A이거나 0이다. A의 옆자리가 0이면 p의 확률로 복제가 일어나서 0이었던 자리를 A로 바꾼다. 1-p의 확률로 A는 스스로 0이 된다. 여기서 A는 옆자리, 즉 이웃한 자리에만 복제할 수 있고 이게 바로 '가까운 거리 상호작용'이다. 먼 거리 상호작용은 바로 옆자리뿐만 아니라 멀리 있는 곳까지 복제가 가능하다는 말이다.

그럼 A가 있는 자리에서 거리 r만큼 떨어진 자리에 복제할 수 있다는 건데, 거리 r을 어떻게 잡을 거냐... 그건 P(r) ~ 1/r^(d+σ)의 확률분포로부터 랜덤하게 얻는다. 여기서 d는 시스템의 공간차원이고 σ는 조절변수다. σ가 무한대이면 그냥 가까운 거리 상호작용이 되고, 무한대보다 작으면 먼 거리 상호작용이 되며, 그 '먼 거리'가 얼마나 멀어질 수 있느냐가 σ에 의해 조절된다.

σ가 매우 작은 값이라고 해보자. 복제(A → 2A)는 공간적 제약 없이 이루어질 수 있고 입자들이 어떤 위치에 있느냐는 크게 중요하지 않게 된다. 따라서 시스템의 공간차원도 의미가 없어지며 이런 경우는 흔히 평균장 어림(mean field approximation)을 이용해서 비교적 쉽게 원하는 답을 얻을 수 있다. 그래서 σ가 윗임계차원을 결정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다른 모든 임계지수들에도 영향을 미친다. 자세한 건 논문을 참고;;;

2) 추가적인 대칭성이 있을 때

'유일한 흡수상태' 조건이 깨진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DP 분류에서 벗어나는 건 아니다. 또한 추가적인 대칭성에 의해 흡수상태가 여러개가 되기도 하므로 흡수상태가 한 개보다 많은 경우도 그냥 여기서 다루겠다. 여기서 소개할 DP가 아닌 보편성 분류로 홀짝 보존(parity conserving; PC) 분류와 Z2 대칭 DP(줄여서 DP2)가 있다.

홀짝 보존이라는 건 처음 입자의 개수가 홀수였으면 계속 입자의 개수가 홀수로 유지된다는 말이다. 물론 처음 짝수개였으면 계속 짝수로 유지된다. 이런 PC 분류를 나타내는 반응식은 다음처럼 쓸 수 있다.

A → (n+1)A, 2A → 0

여기서 n이 짝수일 때에만 홀짝이 보존된다는 걸 알 수 있다. PC의 경우 처음에 입자의 개수가 1개라면 이 시스템에서 입자의 개수가 0이 될 수는 없다. 접촉 과정에서는 입자의 개수가 0이 될 수 있고 입자가 모두 사라지는 상태가 바로 흡수상태이며 그외의 흡수상태는 없다. 반면에 PC에서 처음 홀수개의 입자로 시작한 시스템에서는 흡수상태를 정의할 수 없다. 하여간 흡수상태라는 게 아예 없으니 더이상 '흡수상전이'라 부를 수도 없다. 그렇다고 '상전이' 자체가 없어지는 건 아니다.

다음으로 DP2 분류를 소개한다. 앞에서 입자가 없는 자리는 0으로 나타낸다고 했다. 그런데 이 0이 두 종류인 경우를 생각해보자: 0a, 0b라고 쓰겠다. A → 0, A → 2A에서 0대신 0a 또는 0b로 쓸 뿐 나머지는 별반 다를게 없다. 다만 0a와 0b가 이웃인 경우 둘 중 하나가 A로 변하는 반응이 추가되는데 이게 좀 특이하지만 필요한 요소다.

여기서는 모든 자리가 0a인 흡수상태와 모든 자리가 0b인 흡수상태 이렇게 두 개의 흡수상태가 존재하며 이 두 흡수상태는 Z2 대칭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DP와 거의 같은 규칙인데 흡수상태가 2개여서 DP2라는 이름이 붙었다. 여기서 새로운 건 0a들이 모여 있는 영역과 0b들이 모여 있는 영역이 관찰된다는 거다. 그리고 0a 영역과 0b 영역 사이에는 A가 있고 이 A가 확률적으로 움직이면서 영역들을 합치게 할 수도 있고 새로운 영역이 나타나게 할 수도 있다.

정리하면, PC는 홀짝이 보존되는 대칭성을, DP2는 흡수상태의 대칭성을 도입함으로써 기존의 DP와는 다른 보편성 분류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갈 것은 PC와 DP2가 1차원 격자 위에서는 '일치'한다는 거다. 서로 달라보이지만 하나가 다른 하나로 본뜨기 된다. DP2에서 0a 영역과 0b 영역의 경계에 있는 A만 보면 마치 A → 3A, 2A → 0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곧 PC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2차원 이상의 격자로 가면 PC의 A들이 각자 따로 움직이는 것에 비해 DP2에서는 A들이 여전히 '경계선'의 모양으로 행동하기 때문에 이 두 모형은 아예 달라진다.

참고로 이렇게 1차원에서는 미시적인 규칙까지 동일한 모형들이 2차원 이상에서는 달라지는 경우들이 있다. 1차원에서는 입자 하나의 운동이 영역 사이의 경계점의 운동으로 보일 수도 있으나 2차원보다 큰 차원에서는 입자 하나와 경계선(interface)이 뚜렷이 구분된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또 다른 대칭성인 '입자 개수의 보존'이 있는 DP 즉 C-DP에 대해서 C-DP 추측의 조건들이 깨질 때에 관해 연구한 결과들을 공부해서 소개하고 싶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