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로 옮기려니 참 이상해졌네요. 원래 제목은 Nonequilibrium Phase Transition on a Randomly Diluted Lattice에요. 격자의 자리(site)들이 일정한 확률로 랜덤하게 제거된, 좀 너덜너덜해진 격자를 말합니다. 그런 격자 위에서 접촉 과정이 진행되면 어떤 현상이 나타나는가,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여기서 나타나는 비평형 상전이는 어떻게 이해될 수 있는가?를 다룬 논문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미주리 대학의 보이타(T. Vojta)와 아마도 한국인인 것 같은 이만영(Man Young Lee)씨가 같이 쓴 논문인데요, 2006년에 <피지컬 리뷰 레터스>에 실린 겁니다. 논문이 매우 깔끔합니다. 문제 설정, 주요한 결과, 그 결과를 유도하는 과정이 매끄럽습니다.

'너덜너덜한 격자 위의 접촉 과정'에서 나타나는 상전이에는 두 가지 요소가 개입하는데, 하나는 격자로부터 다른 하나는 그 위의 접촉 과정으로부터입니다.

격자에 구멍을 송송 뚫는 건 스미기(percolation) 문제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요, 너무 많이 뚫으면 격자가 완전히 산산조각 나겠죠. 하지만 쬐끔만 뚫으면 전체적인 모양을 그대로 유지할 겁니다. 하지만 어떤 임계값이 있어서 딱 그만큼만 뚫으면 이건 산산조각 난 것도 아니고 전체적인 모양이 유지되는 것도 아닌 상태가 됩니다. 임계상태라는 거죠. 이 임계값을 스미기 문턱(percolation threshold)이라고 부릅니다. 하여간 '얼마나 뚫느냐'를 p라는 변수로 나타냅니다.

접촉 과정은 어떤 입자가 옆에 빈자리가 있으면 알을 까거나(복제) 또는 혼자 사라지는(소멸) 걸 말합니다. 복제냐 소멸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복제하는 비율을 λ, 소멸하는 비율을 1이라고 하면 λ에 따라 입자들이 계속 살아남는 경우(활성상태)도 있고, 입자가 모두 사라져버리는 경우(흡수상태)도 있을 수 있죠.

그럼 이렇게 두 개의 변수 p와 λ가 어떤 값을 갖느냐에 따라 시스템이 활성상태냐 흡수상태냐로 나뉩니다. p는 작고 λ는 커야만 활성상태가 되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서는 흡수상태가 됩니다. 그리고 활성상태와 흡수상태 사이의 상전이에서 나타나는 임계지수들은 스미기 전이에서 얻어지는 임계지수들로 모두 표현됩니다. 그래서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스미기 문제의 결과들을 이용하면 이 너덜너덜한 격자 위의 접촉 과정의 상전이에 대한 걸 그냥 다 알 수 있다는 거죠.

가장 특이한 결과로는 상관길이(r)와 상관시간(t) 사이의 지수함수적 관계입니다. 한 개의 입자에서 시작해서 접촉 과정을 통해 얼마나 멀리까지 퍼졌느냐가 상관길이이고 얼마나 오랫동안 영향을 미쳤느냐가 상관시간이라고 하면, 임계점에서 이 두 값은 거듭제곱 꼴로 나타나곤 했습니다. 즉 r^z ~ t 이런 식으로요. 그런데 너덜너덜;; 격자에서는 ln t ~ r^ψ 와 같은 관계를 보입니다. z가 무한대로 가는 걸로도 볼 수 있다고 다른 논문에서 본 것 같네요. 이런 걸 '활성화된 눈금잡기(activated scaling)'이라고 부른다네요.

왜 저런 특이한 눈금잡기 모양이 나왔는지는 직관적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격자가 많이 뚫려서 조각난 것 중 하나를 보죠. 그 조각의 넓이를 s라고 하겠습니다. 그 조각 위에서 접촉 과정이 일어나는데 λ가 큰 값이라면 그 조각은 활성화될 겁니다. 즉 입자들이 계속 복제를 한다는 거죠. 하지만 영원히 활성화될 수는 없는데, 입자가 소멸하는 비율이 1로 일정하므로 우연히 모든 입자가 자살;;;을 택하는 아주 드문 일이 발생하면 더이상 이 조각 위에는 입자가 나타날 수 없기 때문이죠. 그렇게 드문 일이 발생할 확률은 exp(-s)와 같이 나타낼 수 있으므로, 그렇게 없어져버릴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exp(s)에 비례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시간을 t라고 하면 t ~ exp(s) 이죠. 스미기 문턱값에서 조각의 넓이는 조각의 길이 r과 s ~ r^D 의 관계에 있고 D는 조각의 프랙탈 차원입니다. 그래서 샤샥 정리하면, ln t ~ r^D 이고 앞에서 정의한 ψ=D 가 되는 거죠. 바로 이렇게 얻어진 활성화된 눈금잡기로부터 다른 중요한 특성들이 유도됩니다. 더 자세한 건 논문을 보시고요;;;;

하여간 제일 중요한 건, 활성화된 눈금잡기에 담긴 의미인 것 같아요. 복제/소멸을 하는 입자들이 섬(너덜너덜 격자의 한 조각)에 갇히면 빠져나올 수 없고, 드물게 발생하는 집단 자살로 인해 더이상 살아남는 놈이 없는 상태(즉 흡수상태)에 빠질 수 있다는 말을 한 마디로 표현한 게 '활성화된 눈금잡기'인 거죠. 문득 고리타님의 연재만화 <천사의 섬>의 윤규복이 떠오른다는;;;;

그럼 이만 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