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쓴 '준정상상태'라는 글에서 빼먹었던 얘기를 쓰려고 합니다. 사실 이 얘기가 먼저 나와야 했습니다. 앞 글에서 썼듯이 흡수상태가 존재하는 모형에서, 유한한 크기의 시스템은 유한한 확률로 흡수상태로 빠져버리기 때문에 유일한 정상상태는 흡수상태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흡수상전이, 즉 활동상태와 흡수상태 사이의 상전이를 유한한 크기의 시스템에서 보기 위해서는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활동상태로 남아있는 놈들이 있어야 합니다. 즉 활동상태가 정상상태인 상황이어야 한다는 거죠.

가장 기본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은 앙상블 평균을 낼 때 살아남은, 즉 흡수상태가 아닌 상태만 가지고 평균을 내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컴퓨터 1000대에 똑같은 초기조건을 가진 1000개의 시스템을 시늉내기하되 난수발생은 저마다 다르게 하는 겁니다. 어떤 시스템은 t=10에서 흡수상태로 빠질 수도 있고 어떤 시스템은 t=100에서 빠질 수도 있습니다. 시각 t에서 입자의 개수의 앙상블 평균을 구할 때 흡수상태에 빠져버리지 않은 시스템들만 가지고 평균을 내겠다는 겁니다.

이 방법의 문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살아남은, 즉 흡수상태로 빠지지 않은 시스템의 개수가 줄어들어 요동(에러)이 커져서 데이터의 질이 점점 나빠진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미 여러 사람들이 여러 방법을 고안해냈습니다. 앞 글에서 쓴 준정상상태 분포를 이용한 방법이 제가 보기에는 제일 좋아보이는데 저 방법을 제일 먼저 봐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외에 두 가지를 더 소개합니다.

2002년에 그라스베르거(Grassberger)가 <전산물리통신(Computer Physics Communications; 제멋대로 번역;;;)>에 발표한 논문을 보면 일종의 유전자 알고리즘 같은 건데요, 역시 앙상블을 갖고 시작하는데 각 상태마다 가중값(weight)을 주고 가중값의 변화를 관찰합니다. 어떤 상태의 가중값이 어떤 상한선보다 크면 그 상태를 하나 복제한 후 가중값을 반씩 나눠가집니다. 이 두 상태는 각각 독립적으로 진화하는 거죠. 가중값이 어떤 하한선보다 낮은 상태는 없애버리거나 다시 한 번 기회를 주기도 합니다.

이걸 흡수상전이 시늉내기에 적용하면, 앙상블 중 흡수상태로 빠진 놈이 생기면 그 자리에 다른 상태(아직 흡수상태에 빠지지 않은)를 복제한 후 시늉내기를 계속하는 겁니다. 써놓고보니 기본 아이디어는 준정상상태 분포를 이용하는 거나 이거나 비슷비슷하네요.

다음으로, 루벡(Lubeck)이 2003년 PRE에 발표한 논문에서는 외부 장을 걸어줌으로써 흡수상태로 빠지지 않게 합니다. 접촉 과정에서 외부 장이란, 빈 자리에 입자 하나를 생성시키는 걸 말합니다. 흡수상태는 입자가 모두 사라져버린 상태라서 더이상 활동이 일어날 수 없는 걸 가리키는데 외부 장을 걸어주면 더이상 흡수상태는 존재하지 않는 거죠. 그리고 이 외부 장을 0으로 보내면 원래 외부 장이 없는 모형의 상전이를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루벡의 방법과 흡수상태에 빠지려는 놈들을 아직 흡수상태로 빠지지 않은 놈들로 복제/대체하는 방법이 실은 별로 다른 게 아니다라는 주장을 한 논문을 소개합니다. 프루스너(Pruessner)가 2007년에 PRE에 발표한 논문입니다. 프루스너는 루벡의 방법을 '외부 장 앙상블(external field ensemble)'이라고 부르고, 복제/대체하는 방법을 '조건부 앙상블(conditional ensemble)'이라고 부릅니다. '조건부'라는 건 살아남은 놈들'만' 갖고 앙상블 평균을 내겠다는 거여서 그렇습니다.

프루스너의 주장은 이 두 앙상블이 동등하다는 겁니다. 외부 장 앙상블은 외부 장의 크기 h가 또다른 조절변수로 들어오지만 h가 충분히 작기만 하다면 결국 조건부 앙상블과 다를바 없다는 겁니다. 모래더미 모형을 생각하면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사실 지금 열거한 사람들 모두 모래더미 모형을 연구했거나 연구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여간 모래더미 모형에서 모래알 하나를 떨어뜨리고 사태가 일어난 후 다시 잠잠해지면 이 잠잠한 상태를 흡수상태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모래알을 새로 떨어뜨리는 행동은 아주 작은 h를 걸어준 걸로 봐도 되고, 흡수상태를 활동상태 중 하나로 대체한 것으로 봐도 됩니다. 이 아이디어를 갖고 더 자세히 분석한 부분은 웬지 읽기가 싫어서 말았습니다만, 아이디어는 간단합니다. 물론 h가 얼마나 작아야 '충분히 작은' 거냐 같은 문제가 있겠습니다만.

아, 그러고보니 원래 쓰려던 것 중 하나를 못 썼네요. 다음 글에서 풀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