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소개할 내용이 담긴 논문은 제가 태어나기도 몇 년 전에 출판된 것입니다. 제목에 썼듯이 해리스라는 사람이 쓴 건데요, 논문 제목을 한국어로 옮기면 '랜덤한 결함이 이징 모형의 임계행동에 미치는 영향'입니다.

이징 모형(Ising model)은 격자 위의 각 자리에 +1 또는 -1의 값을 갖는 스핀이 있고 이들이 서로 같은 방향으로 정렬하려는 경향과 열에너지에 의해 랜덤한 방향을 가지려는 경향이 경쟁하는 모형입니다. 이 두 경향이 균형을 이루는 지점을 '임계점'이라고 하고 그때 나타나는 현상을 임계현상이라고 하죠.

이웃한 두 스핀이 같은 방향으로 정렬하려는 경향은 두 스핀 사이의 결합상수로 조절됩니다. 모든 이웃한 스핀에 대해 이 결합상수가 모두 같은 값이라면 다루기가 더 쉽겠지만, 실제로는 자성체에 다양한 모양과 성질의 결함이 존재하기 마련이죠.

이를테면 두 스핀 사이에 자기장을 차단하는 물질이 끼어있어서 그 스핀들이 상호작용할 수 없는 경우도 생길 수 있습니다. 이 경우 두 스핀 사이의 결합상수는 0이 되겠죠. 그런데 이 이물질이 아무데나 랜덤하게 박혀 있다고 하면 '랜덤한 결함'이 되는 겁니다.

이런 랜덤한 결함이 있는 비율, 즉 결함의 밀도를 x라고 합시다. x가 커질수록 스핀 사이의 정렬하려는 경향이 약해지므로 더 낮은 열에너지로도 균형을 맞출 수 있어서, 더 낮은 온도에서 상전이가 일어납니다. 즉 임계온도 T_c가 x에 따라 줄어듭니다. 그리고 대충 이 시스템의 해밀토니안을 생각해보면;;; T_c(x) = T_c(0) - A * x 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사실 x^2 이상의 항이 들어가기는 하는데 이 항은 x가 작으면 무시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랜덤한 결함과 같은 '무질서(disorder)'라는 요소에 의해 임계온도가 바뀝니다. 그렇다면 임계현상도 바뀔까요? 이게 중요한 질문인데 위에 소개한 논문이 나오기 전부터 지금까지도 많이(?) 연구되는 이슈이기도 합니다. 무질서는 임계현상에 영향을 주기도 하고 주지 않기도 합니다. 그 기준이 뭐냐? 바로 해리스 기준(Harris criterion)입니다:


ν는 온도에 따라 상관길이가 변하는 정도를 나타내는 임계지수이고 d는 시스템의 공간차원입니다.

머리 속에 2차원 격자를 그려봅시다. 격자의 점들을 잇는 링크들이 x의 확률로 제거된 너덜너덜한 격자를 생각해봅시다. 어떤 영역은 운이 좋아서 거의 원래 상태를 유지(낮은 x)할 수도 있고 어떤 영역은 운이 나빠서 누더기처럼 변한 곳(높은 x)도 있을 겁니다.

x가 크냐 작으냐에 따라 그 영역의 임계온도도 원래 T_c로부터 더 줄어들거나 덜 줄어들 수 있습니다. 즉 영역에 따른 x의 불균등한 분포로 인해 영역에 따라 T_c가 달라질 수 있고 그러면 이 전체 시스템의 임계온도를 하나의 값으로 정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떠오르는 거죠.

즉 공간적으로 불균등한 어떤 상황이 발생했어도 시스템 전체의 임계점은 하나의 특정한 값으로 결정될 수도 있고, 불균등의 정도가 너무 심해서 임계점 자체를 하나의 값으로 정하지 못하고 임계점의 분포로 이해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기도 합니다. 바로 이 두 경우를 나누는 기준이 해리스 기준입니다. 임계점이 하나의 값에서 임계점의 분포로 변하는 걸 임계점이 번졌다(smear)라고 합니다.

임계점이 번지는 경우도 있겠으나, 해리스 기준은 임계점이 번지지 않는 경우에 무질서가 임계현상을 바꾸는지 여부를 결정하는 기준입니다. (* 2009년 4월 2일 저녁 6시 40분 덧붙임)

대충 개념을 설명했으니 좀더 자세히 보기 위해 그림 하나를 그렸습니다.


위 그림의 x는 위치 x가 아니라 어떤 영역의 너덜너덜한 정도입니다. x에 따라 T_c(x)가 줄어든다고 했죠. 특정한 x에는 특정한 T_c(x)가 대응합니다. 그런데 영역에 따라 x가 서로 달라진다고 했죠. 그래서 x의 분포를 생각할 수 있는데 위의 x축의 위에 그린 종모양이 그 x의 분포입니다. 분포의 폭(width)은 Δx라고 썼습니다. 그럼 그에 따라 T 역시 종모양의 분포를 보일 거고, 이 종의 폭은 ΔT라고 썼습니다.

시스템이 무질서할 때 이게 임계점을 번지게 할거냐 말거냐는 임계현상을 바꿀거냐 말거냐는 무질서한 시스템의 상관길이가 위의 ΔT에 의해 결정되는 상관길이를 넘어설 거냐 아니냐에 달려 있습니다. 제가 (거칠게) 이해한 바로는, 'ΔT에 의해 결정되는 상관길이'란 무질서한 정도 x에 의해 결정되는 불균등한 영역들의 크기에 해당하는데 실제 상관길이가 이보다 작다면 각 영역 안의 클러스터들은 전체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결국 임계현상을 바꿀 수 없게 됩니다.

그 반대의 경우, 즉 실제 상관길이가 x의 불균등에 의한 영역들의 크기를 넘어서면 시스템 전체에 영향을 끼치는 다양한 상관길이가 출현하고 이들 각각이 자신만의 임계점을 나타내므로 임계점이 번지게 됩니다.라고 저는 이해했는데 아직도 제 머리 속의 무질서도가 커서 이해가 특정한 하나의 설명으로 명확해지지 못하고 번져(smear) 있습니다;;;;

시스템의 상관길이를 ξ라고 하면


이 됩니다. 위식의 맨 오른쪽 관계식은 상관길이로 상관되어 있는 클러스터의 스핀의 개수를 N이라고 하면 N ~ ξ^d 인데, 결함이 있는 링크의 비율 x의 표준편차는 1/sqrt(N)에 비례하므로 얻어진 것입니다. 위 부등식을 만족시키면 각 영역의 상관길이가 시스템 전체의 임계행동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거고, 그 조건을 쓴 게 해리스 기준인 것입니다.

처음에는 평형통계물리에서 나온 개념이지만 이후에 비평형통계물리의 모형들에도 적용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서 풀어보도록 하죠. 너무 길어졌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