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해리스 기준에 대해 소개를 했죠. 랜덤한 결함 따위의 무질서가 임계현상을 바꿀 수 있느냐 없느냐의 기준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상관길이에 초점을 맞춰 이해하려고 했는데요, 그림이 명쾌하게 그려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온도, 즉 조절변수 관점에서 이해해볼 수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무질서한 시스템의 온도를 낮추면서 임계점 근처로 가까이가는 경우를 봅시다. 온도가 임계점에 다다를수록 상관길이가 길어질 겁니다. 그에 따라 상관길이 정도의 시야에서 느껴지는 무질서한 정도는 줄어듭니다.

온도와 임계점의 차이를 t라고 하고 상관길이를 ξ라고 하고(ξ ~ t^ν) ξ의 시야에서 느껴지는 무질서한 정도는 Δx이며 이건 ΔT에 비례한다고 했죠. t가 줄어드는 속도보다 ΔT가 줄어드는 속도가 빠르면, 상관길이 시야에서 보면 대충 균질한(즉 덜 무질서한) 시스템으로 느껴질 겁니다. 즉 무질서가 임계현상에서 중요하지 않게(irrelevant) 됩니다.

반대로 ΔT가 줄어드는 속도가 t가 줄어드는 속도보다 느리면, 상관길이 시야에서 보기에 시스템은 매우 무질서한(울퉁불퉁) 것으로 느껴질 겁니다. 이러면 무질서가 임계현상에 중요해지겠죠(relevant).

손등의 피부 얘기로 비유를 들어볼까요? 누구 손이든 자세히 보면 땀구멍도 뚫려있고 등등 굉장히 울퉁불퉁할 겁니다. 조금씩 멀리서 보면 점점 더 부드럽게 보이겠죠. 그런데 사람마다 '멀리서 볼수록 손등이 부드럽게 보여지는 속도'가 다 달라서, 누구는 금방 매끄러운 피부처럼 보일 거고 누구는 여전히 울퉁불퉁해 보일 겁니다.

그러니까 사람마다 ν를 측정해서 2/d와 비교해본 후 ν가 더 크면 매끄러운 피부로 인정해주고, 더 작으면 울퉁불퉁한 피부로 인정(낙인?;;;)해줄 수도 있습니다. 매끄러운 피부냐 아니냐라는 이 기준을 해리스 기준이라고 합니다. (이런 걸로 사람들을 현혹해서 장사를 해볼까요?;;;; 현혹이 될까?;;;;)

말이 길어졌네요.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는데요, 위에서 ν는 무질서하지 않은, 즉 순수한/깨끗한(pure/clean) 시스템에서 측정된 값을 써야 합니다. 또한 조셉슨 법칙(2 - α = dν)을 이용하면 해리스 기준은 α < 0으로 다시 쓸 수 있습니다. 여기서 α는 비열의 임계지수입니다.

다음으로, 럭(Luck)이 1993년에 <EPL(Europhysics Letters)>에 출판한 논문을 소개합니다. 랜덤한 결함은 스핀 사이의 링크를 랜덤하게 끊는 것으로 만들 수도 있고, 스핀 사이의 상호작용의 세기를 일정한 모양의 분포로부터 랜덤하게 줄 수도 있습니다. (단, 모든 상호작용 세기가 0보다 크다고 가정합니다.)

얼핏 그게 그거 같지만, 앞의 방식에서는 랜덤하게 끊긴 링크의 밀도가 무질서의 정도였다면, 뒤의 방식에서는 상호작용 세기의 분포의 폭이 무질서의 정도로 이용됩니다. 일단 이 논문은 뒤의 방식을 갖고 얘기를 풀어나갑니다.

상호작용 세기의 분포의 평균을 J0라고 하고 이 분포로부터 랜덤하게 나온 상호작용을 J라고 합시다. 한 변의 길이가 L인 상자의 부피는 L^d (d는 공간차원)가 되겠죠. 그럼 이 상자 속의 상호작용 세기의 요동(표준편차), 즉 무질서의 정도 ΔJ / J0는 L^{-d (1 - β)}로 놓도록 하자는 겁니다. β라는 지수가 새로 도입되었는데요, 이걸 빗나감 지수(원래 wandering exponent인데 제맘대로 옮겼습니다;;;)라고 부릅니다. β는 0보다 크거나 같고 1보다 작다고 가정합니다.

해리스 기준에서 ΔT로 썼던 게 여기서는 ΔJ / J0에 비례합니다. 그럼 이제 다 된 겁니다: β < 1 - 1/(dν) 이 부등식을 이후에 해리스-럭 기준(Harris-Luck criterion)으로 부르더라고요. 이 부등식의 우변을 β_c로 정의합시다. 즉 β_c = 1 - 1/(dν) 입니다.

해리스-럭 기준은 해리스 기준보다 일반적입니다. β = 1/2인 특수한 경우에 해리스-럭 기준은 해리스 기준이 됩니다. β = 1/2이라는 말은 시스템에 구현된 무질서들이 모두 완전히 독립적이라는 건데요, 사실 지금까지 그런 가정을 계속 써와서 이게 '특수한 경우'가 아닌 것 같을 수도 있지만 '완전히 독립적'이라는 게 특수한 경우이기는 하죠.

일단 여기까지 정리하고요, 이제 좀더 본격적으로 비평형 상전이 모형에 무질서가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를 나중에 더 정리해서 올리겠습니다. 사실 이미 한 번 관련된 내용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마구 희석된 격자 위의 비평형 상전이'라는 글이었어요. 관련된 연구가 한두개가 아니라 공부할 게 많습니다. 벌써 12시가 넘었네요. 한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