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질서와 임계현상에 대해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말 중 하나가 그리피스 특이성(Griffiths singularity)입니다. 이에 관해 1969년에 PRL에 출판된 그리피스의 논문은 분량만 보면 3쪽이 살짝 넘는 정도로 간결합니다. 그런데 아직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이렇게 주절거리면서 생각을 정리해보려고 글을 씁니다.

우선 1952년 양(C.N. Yang)과 리(T.D. Lee)에 의해 제안된 양-리 영들(Yang-Lee zeros)과 이 영들에 관한 원 정리(circle theorem)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합니다[PR 87, 404 (1952); PR 87, 410 (1952)]. 평형통계물리에서는 분배함수를 구하는 일이 중요한데요, 입자가 드나들 수 있는 시스템에 대해서는 '큰분배함수(grand partition function)'를 이용합니다.



좀 복잡해보이기는 하네요. 다른 건 다 빼고 중요한 것만 짚고 넘어갈 겁니다. μ는 화학 포텐셜(chemical potential)이라고 불리는 건데, 입자의 개수를 변화시킬 때 작용하는 포텐셜입니다. 어떤 온도 T에 부피가 V인 공간에 M개의 입자가 있을 때의 큰분배함수 Z가 위 식처럼 쓰여지는데요, 가만 보면 y의 M차 다항식이죠, 그러므로 Z=0이 되는 y값들을 y_i라고 하면 위 식의 맨 오른쪽처럼 쓸 수 있습니다. 이 y_i들을 양-리 영들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y의 M차 다항식의 계수들이 모두 양수이므로 양의 실수인 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서 양의 실수인 y_i는 없다는 거죠. 하지만 복소수인 해는 존재합니다. y를 복소수로 두면 복소평면 위에 있는 y_i들을 찾을 수 있는데요, 이 y_i들이 모두 단위원 위에 올라가 있다(즉 |y_i| = 1)는 게 양-리 원 정리(Yang-Lee circle theorem)입니다. (참고로, 이 증명은 M에 대해 수학적 귀납법으로 하더군요.)

y에 관한 다항식으로 씌여지는 Z는 y에 따라 연속적으로 변할 겁니다. 그래서 이런 경우에는 무한대나 불연속으로 특징지어지는 상전이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V를 무한히 키우면 그에 따라 M도 무한히 커질 수가 있고 그러면 양의 실수인 y_i가 나타나며, 그 y_i에서 상전이가 나타납니다.

양의 실수인 y_i에 의해 Z=0이 되는 상황이 왜 중요하냐면, 물리적으로 의미 있는 불연속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양의 실수가 아닌 복소수 y라는 건 물리적으로 의미가 없거든요. 그리고 Z=0이면 ln Z 가 발산하므로 자유에너지도 발산하죠. 이러한 무한대에 의해 질적으로 다른 두 상(phase)을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y_i의 분포가 어떠냐만 가지고도 상전이에 대해 많은 것(또는 전부?)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y_i의 분포를 안다는 건 분배함수를 안다는 거니까 당연한 얘기겠네요.

y_i가 모두 단위원 위에 있다고 했으므로 단위원의 어느 방향이냐(즉 실수축과의 각도 θ)만 알아도 되죠. 각도 θ에 있는 y_i의 밀도를 g(θ)로 쓰는데 이걸 여러 다양한 모형에서 구체적으로 계산하는 것도 오랫동안 연구되어 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충주대 김승연 교수님이 작년 여름에 이 주제로 발표하시는 걸 들은 적이 있습니다.

참고로 분배함수가 정의되지 않는 비평형통계모형에서도 양-리 영들에 대한 연구를 한 사람들이 있더라구요. 방향성 있는 스미기(DP)에 대해서는 2002년 JPA(Journal of Physics A) 논문이 있고, 비대칭 단순 배제 과정(asymmetric simple exclusion process; ASEP)에 대해서는 2002년 PRL 논문이 있습니다.

양-리 영들이 뭔 얘기를 하려는지는 대충 알겠는데, 아직 제 언어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일단 계속 가보겠습니다.

분배함수 Z를 구했다고 치고, 그럼 이걸로 다른 모든 물리량을 얻어낼 수 있죠. 입자의 밀도 ρ는 ln Z를 ln y로 미분한 결과에 비례합니다. 대략 쓰면,


입니다. 원래 논문에 의하면 M을 무한대로 보내는 극한까지 해줘야 ρ가 정의됩니다.

아직 그리피스 얘기는 꺼내지도 못했는데 너무 길어졌네요. 그래서 이 글의 제목도 '양-리 영들'로 바꾸고 마무리 하려고 합니다. 원래 양과 리의 두 논문은 이징 모형에서 얻은 결과를 격자 기체(lattice gas)의 문제에도 적용할 수 있다는 동기에서 출발합니다. 위에서는 일단 기체에 관한 식과 용어들로 시작했는데요, 그대로 이징 모형으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대강 말해서, 기체의 화학 포텐셜의 자리를 이징 모형의 외부자기장 H로 바꿔주면 됩니다. 그럼 y_i=1이 되는 건 H=0이라는 걸 뜻하므로, H=0일 때에만 상전이가 나타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 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