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수상태가 존재하는 비평형 모형에서 상전이를 시늉내기할 때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흡수상태는 말 그대로 거기 빠지면 다시는 빠져나올 수 없는, '상태공간의 블랙홀'이라고나 할까요.

또한 우리가 다루는 확률과정에는 우연이 개입합니다. 입자가 생기거나 사라지는 건 우연, 즉 난수(random number)에 의존한다는 말이죠. 매번 서로 다른 난수가 발생하므로 그 시스템을 일관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가능한 많은 샘플을 모아서 판단해야 합니다. 주로 기대값이나 평균이라는 양을 측정함으로써 그 대상에 대한 성질을 파악할 수 있죠.

사람도 마찬가지죠. 관계가 오래될수록 예상하지 못한 사건이 생겼을 때 일희일비하지 않고 일관성 있게 해답을 찾아나갈 수 있을 겁니다.(라고 쓰고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고 읽습니다;;; 여기에는 '자기평균(self-average)'에 대한 이슈가 있는 것 같습니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만일 흡수상태가 존재하는 어떤 확률과정에 대해 100개의 샘플을 갖고 시늉내기를 한다면 그중 일부는 흡수상태로 빠져버릴 겁니다. 이때 평균을 구할 때 흡수상태로 빠진 샘플을 포함시킬 것인가 제외할 것인가가 문제로 떠오릅니다.

무한히 큰 시스템의 운명은 복제율(접촉 과정의 유일한 조절변수)이 임계값보다 작으면 흡수상태로 빠지고, 임계값보다 크면 활동상태에 남습니다. 하지만 시늉내기는 '유한한 크기'의 시스템에서만 가능하므로 복제율이 임계값보다 커도 흡수상태로 빠지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샘플을 위의 평균에 포함시킨다면 평균을 깎아먹음으로써 '무한히 큰 시스템'에서 나타나는 결과와 더욱 다른 결과를 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흡수상태로 빠진 샘플을 제외한 평균.을 구하는 방법이 잘 알려져 있습니다. 제가 이걸 제맘대로 생존 평균이라 부르겠습니다. 흡수상태를 포함하여 구한 평균은 전체 평균이라 부르겠습니다.

생존 평균이 복제율이 (임계값보다) 큰 경우에는 일리 있는 방법이지만, 반대로 복제율이 작은 경우에는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원래' 다 흡수상태로 가야 하는데 그런 걸 제외하고 평균을 내다보니 실제로는 활동상태에 있는 샘플만 고려하게 된다는 거죠. 유한한 크기의 시스템에서는 생존 평균으로는 흡수상태가 제대로 관찰될 수 없습니다.

이제 위 그림을 보죠. 1차원 접촉 과정 시늉내기를 한 후 흡수상태를 포함시킨 경우, 제외한 경우를 모두 그린 겁니다. 하나의 복제율에 대해 두 개씩의 곡선이 얻어집니다. 아래로 뚝 떨어지는 건 전체 평균이고, 0보다 큰 일정한 값으로 수렴하는 건 생존 평균입니다. 보다시피 생존 평균으로 흡수상태를 관찰하기 힘들죠. 그런데 활동상태인 경우(λ=3.6) 어떤 방법으로 평균을 내도 차이가 없어보입니다. 다시 말해서 흡수상태로 빠지는 샘플이 거의 없다는 말이죠.

지금까지만 보면, 복제율이 임계값보다 크든 작든 전체 평균이 생존 평균보다 좋은 평균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복제율이 임계값(λ=3.3) 근처에 있을 때입니다. 여기서는 어떤 평균이 더 나은 방법인지 판단하기 힘듭니다. 임계값보다 살짝 큰 복제율인 경우, 흡수상태로 빠진 샘플이 전체 평균을 깎아먹는 효과가 매우 크기 때문에 전체 평균만 보면 활동상태도 흡수상태로 보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임계값을 미리 알고 있다면 활동상태에서는 생존 평균을, 흡수상태에서는 전체 평균을 이용하면 그만이지만, 미리 알지 못한다면, 오히려 이 시늉내기를 통해서 임계값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단 임계값만 찾으려 한다면, 위 그림에서 전체 평균과 생존 평균이 갈라지는 점까지만 의미 있는 데이터로 간주하여 거듭제곱 꼴이 가장 깔끔하게 나오는 복제율을 임계값으로 정해주면 됩니다.

임계값을 이렇게 정한다고 해도, 유한한 크기의 시스템에서 정상상태의 입자밀도를 어떤 평균으로 구해서 봐야 좋은지는 여전히 문제로 남을 겁니다. 물론 여러 접근 방법이 나와있지만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다시 검토해볼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