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4/12/08

합리적 선택이론(rational choice theory)을 알게 된 것은 올 봄 우리학교에 강연을 온 상지대 정대화 교수로부터인 듯 하다. 합리적 선택이론이라는 웬지 딱딱해보이는 말보다도 그 결과의 하나인 '의도하지 않은 결과(unintended consequences)'가 더 와닿았다. 예전부터 계속 내 머리 속에서 맴돌고 있는 개념이다. 일단 합리적 선택이론이 무엇인지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인터넷을 뒤졌고 그 중 한 싸이트를 발견하여 읽어보았다.

http://privatewww.essex.ac.uk/~scottj/socscot7.htm

에섹스 대학 사회학과 교수인 존 스콧(John Scott)은 사회연결망분석에 관한 책(Social Network Analysis: A Handbook)을 쓰기도 해서 이름만 알고 있었다. 말머리는 여기까지. 내용을 정리해보겠다.

경제학은 사회과학 중에서도 가장 성공적인 것으로 꼽히는데 그래서 사회학자나 정치과학자들도 경제학에서 가정하는 '합리적 인간'과 비슷한 전제로 출발하고자 한다. 모든 행동은 근본적으로 합리적이며 사람들은 무엇을 할지 결정하기 전에 그 행동의 비용과 편익을 계산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합리적 선택이론이고 이를 사회적 상호작용에 적용하면 교환이론(exchange theory)의 형태를 갖는다.

사회학에서 합리적 선택이론을 세우는데 선구적인 역할을 한 호만스(George Homans)는 행동주의심리학(behaviourist psychology)에서 나온 가정을 전제로 교환이론의 기본틀을 세웠다고 한다. 이는 스키너(Skinner)의 행동주의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동물들은 먹이가 기본적인 목표인데 반해서 인간은 돈뿐만 아니라 동의, 사랑 같이 좀더 넓은 범위의 목표를 갖고 있다. 호만스는 그 중에서도 동의(approval; 원래 뜻은 동의, 찬성인데 나는 이걸 '인정'이라고 해석하는 게 더 맞지 않을까 생각했다.)가 가장 기본적인 인간의 목표라고 한다. 그리고 돈과 동의가 사회적 상호작용에서 교환의 일반적인 수단이라고 한다.

하여간 수학을 쓰다보니 합리적 선택이론가들도 미시경제학의 흐름에 가까워지고 있다. 그런데 한가지 놀라운 점은 합리적 선택이론을 계급과 착취에 관한 맑스주의의 기초로 보는 연구들이라고 한다.

합리적 선택이론은 복잡한 사회현상들이 개인들의 행동들로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이런 관점은 방법론적 개인주의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엘스터(Elster)의 말을 인용하자:

사회적 삶의 기본 단위는 개인의 행동이다. 사회제도와 사회변화를 설명한다는 것은 그것들이 개인들의 행동과 상호작용의 결과로서 나타난다는 것을 보이는 것이다.


경제이론들이 돈과 시장 메커니즘을 통해 상품과 서비스의 생산, 분배, 소비를 다루듯이 합리적 선택이론가들은 시간, 정보, 동의, 특권 같은 자원이 연관된 것으로 상호작용을 이해하려고 한다. 경제적 행동이 상품과 서비스의 교환을 다루듯이 사회적 상호작용은 동의의 교환을 다룬다. 즉 보상과 비용(처벌)을 계산하여 사회적 행동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쉽게 측정되지 않으며 아직 적절한 방법이 발달되지 않았단다. 여기서도 '효용(utility)'의 개념을 적용하여 행동의 효용을 그것을 하는데 드는 시간이나 빈도로 볼 수도 있단다. 또한 처벌이나 보상 그 자체뿐만 아니라 처벌하겠다는 '협박'과 보상하겠다는 '약속'도 행동의 동기로 작용한다.

호만스는 교환을 하는 당사자들이 이익을 얻지 못하면 교환이 이루어질 수 없다고 말한다. 교환관계는 또한 권력관계인데 상대적인 권력의 크기는 참가자들이 얼마나 많은 대안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의존한다.

이제 이 합리적 선택이론의 문제들을 살펴보겠다. 크게 세 가지로 나뉘는데 집합행동의 문제, 규범과 의무의 문제, 사회구조의 문제다.

단체나 조직에 가입하지 않고도 개인적인 이득을 얻을 수 있는 경우에도 왜 사람들은 단체나 조직에 가입하여 집합행동을 하는지를 설명하기가 힘들다. 어떤 단체나 조직이 있어서 거기에 가입하여 활동하지 않더라도 그 단체의 활동의 결과로 이득을 얻을 수도 있다. 여기서 무임승차자(free rider) 문제가 발생한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한다면 아무도 단체나 조직에 가입하지 않을 것이고 당연히 단체나 조직의 협상력은 떨어지므로 결국 불로소득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한 가지 방법으로 '선택적 이득'이 있다. 올슨(Olson)이 제안한 이것은 그 단체나 조직에 참여한 사람에게만 이득이 돌아가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렇게 하지 않더라도 조직이 운영되는 경우가 있으며 앞서 제기된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음으로 사람들은 자신들의 이익과는 무관한 규범이나 의무에 따르기도 하는데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있다. 사회적 교환이 일회적이지 않고 되풀이되는 경우 사람들은 협조가 서로의 이득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을 빨리 배운다고 한다. 즉 단기적으로 손실이 있더라도 협조함으로써 장기적인 이익을 보장받을 수 있다면 규범이나 의무에 따른다는 것이다. 그런데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상받는 것을 누가 보장해줄 수 있는지도 문제다. 파슨스(Parsons)는 이기적인 합리적 행위자들은 안정적인 사회적 질서를 만들어낼 수 없다고 한단다. 그래서 사회적 질서를 규범적이고 비합리적인 요인들을 고려해야만 설명할 수 있다고 한다. 엘스터는 규범은 결과지향적이지 않고 오히려 개인들에게 '내부화'되며 순수한 합리성으로만 설명될 수 없는 강제적인 특성이 있다고 논의한다.

마지막으로 사회구조의 문제를 보자. 호만스는 독립적이고 자동적인 사회구조는 없다고 말한다:

사회의 비밀을 충분히 오랫동안 본다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쉽게 발견할 것이다: 사회의 비밀은 그것이 사람에 의해 만들어지고 사람이 만들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또한 제도가 복잡해지는 것은 교환관계의 간접적인 성질이 더 많아진다는 것을 뜻한다. 즉 노동자는 일에 대한 대가를 기업의 사장으로부터 직접 받지 않고 중간 간부로부터 받는데 이렇게 상호작용이 간접적으로 될수록 제도가 복잡해진다. 어쨌든 사회구조도 서로 연관된 개인들의 행동들의 사슬인 것이다. 그리고 이런 부분을 연구하는 한 가지 방법이 사회연결망분석이다.

사회적 삶의 구조적인 면을 설명하려는 가장 성공적인 시도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다. 이것의 예는 이른바 완전경쟁시장에서의 '보이지 않는 손'인데, 수요와 공급의 균형은 계획되지 않고 의도되지 않은 결과라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하게 말해야 할 것은, 합리적 선택이론가들은 사회구조의 자동이나 속박력(autonomy or constraining power)을 부정하려고 한다. 다시 말해서 의도하지 않은 결과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일 뿐 사회구조가 인간의 행동과 무관하게 알아서 움직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 마지막 지적이 가장 눈여겨보아야 할 점이라고 생각한다. 의도하지 않은 결과는 좋은 결과일 수도 있고 나쁜 결과일 수도 있지만, 그 역시 인간 개개인들의 행동의 집합으로 이루어진 것이지 눈에 보이지 않는 '사회구조'가 알아서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합리적 선택이론의 문제점들을 지적한 부분을 보면서 머리 속에 계속 떠오른 그림이 있다. '개인'의 보상과 비용을 계산할 때 그 개인의 범위에 관한 것이다. 되풀이되는 게임에서 개인들은 장기적인 비전을 가질 수가 있으며 동시에 더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인식할 수 있다. 결국 그것도 상호작용의 범위를 시공간적으로 확대함으로써 나타나는 효과일텐데 이런 방향으로 논의를 진전시킨 연구들이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제 '합리적 인간'이라는 가정은 더이상 맞지 않는다. 애초에 그것은 가상의 공간에서나 존재하는 것이었다. '제한된 합리성'에 관한 연구들도 많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