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quenched disorder에 대한 적절한 우리말로 '굳은 무질서'는 어떨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벽이나 바닥(격자 또는 공간)에 얼룩(결함)이 랜덤하게 묻어서(무질서) 굳어버린 상태라는 거죠.

그러고보니 무질서한 시스템을 공부하는 이유에 대해 지금까지 여기에 적지 않은 것 같네요. 무질서한 접촉 과정의 경우만 생각해보겠습니다. 관련 논문들의 도입부에 항상 언급되는 내용이기도 한데요, 비평형 통계물리 또는 비평형 상전이의 가장 단순하면서도 여전히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방향성 있는 스미기(directed percolation; DP) 보편성 분류에 속하는 대표적인 모형인 접촉 과정의 상전이를 실험적으로 관찰하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2000년에 출판된 힌릭센의 리뷰 논문에서는 작은 섹션 하나를 할애하여 DP를 보여줄 것으로 예상되거나 시도되어온 실험 연구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논문에서 소개된 실험들이 이후에 좋은 성과를 거뒀는지는 찾아본 적도 없고 사실 별로 관심도 없습니다;;; 그러다 최근에 실험적으로 DP에 속하는 상전이를 봤다는 연구들이 나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것도 나중에 읽어보고 소개해볼게요. 일단 논문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K.A. Takeuchi et al., Physical Review Letters 99, 234503 (2007).
L. Corte et al., Nature Physics 4, 420 (2008).

어쨌든 실험에서는 접촉 과정의 '깨끗한' 공간을 만들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깨끗하게 한다고 해도 여기저기 결함들이 랜덤하게 널려 있고 또한 '굳어' 있다는 거죠. 이러한 무질서/결함이 시스템의 임계행동을 바꿀 거냐?라고 당연히 물을 수 있고 이에 대한 한 가지 기준이 해리스 기준이라는 거였죠.

해리스 기준에 따르면, 접촉 과정의 경우 무질서가 임계행동을 바꿀 거라고 예측할 수 있고, 실제 자연현상에는 특히 굳은 무질서가 존재하므로 깨끗한 접촉 과정에서나 얻어지는 값들이 실험적으로 나타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도 무리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더러운(즉 굳은 무질서가 존재하는)' 접촉 과정에서의 상전이/임계현상에 대해 이론적으로는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가 바로 '무질서한 접촉 과정(DCP)' 연구가 밝히려는 문제입니다. 괜히 시간이 남아서 하는 게 아니라는 거죠;;;

그러면 이렇게 블로그에 글 쓰는 건 시간이 남아서일까요, 아닐까요?;;; 그래도 이렇게 글을 쓸 시간이 있다는 것.도 하나의 사실이며, 이렇게 함으로써 스스로의 한계를 다시금 되새길 수 있고 이로 인해 공부할 동기가 생기기도 하고 공부의 방향을 생각해볼 수도 있으므로 헛되이 시간을 보내는 건 아니라는 것도 사실입니다.라고 혼자서 변명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