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열린 물리학회 통계물리학분과 포커스 세션의 첫 발표는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이제호 교수의 "Complexity Research in Management"였다. 좁은세상 연결망 위에서 두 상품이 경쟁을 할 때 연결망 구조에 따라 승자가 독식하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하고 두 상품이 공존하기도 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다른 여러 조절변수들이 있겠지만 행위자들의 상호작용의 구조가 좁은세상이냐 넓은세상이냐에 따른 결과의 차이를 보려고 했으며 넓은세상일 때에만 공존이 가능하다는 것이 결과 중의 하나였다.

세상이 좁다는 것은 먼거리 상호작용이 많다는 것이며 인터넷이 발달하여 지구반대편의 소식을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고, 어디 가서 익명으로 나쁜 짓을 해도 몇 단계만 거치면 내 주변 사람들이 다 알게 된다는;; 그런 뜻이다. 세상이 넓다는 것은 상호작용의 정도가 여전히 낮거나 또는 끼리끼리 모여 있는 커뮤니티 내에서만 주로 상호작용을 한다는 것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이를 국소성(locality)이라 하자.

기억에 따르면, 발표에서는 언급되지 않았거나 최소한 강조되지 않았지만 내가 보기에 중요한 점은, 국소성이 경쟁/선택의 압력을 낮추는 효과를 가진다는 것이다. 경쟁/선택의 압력이 클수록 두 상품의 작은 차이가 커다란 차이(즉 하나는 시장을 장악하고 다른 하나는 망하는)를 가져올 수 있다. 하지만 압력이 작다면 적당히 비슷한 두 상품은 공존할 수 있다. 사실 국소성보다도 경쟁/선택 압력이 더 중요한 요인으로 보이며 상호작용의 구조에만 초점을 맞출 경우에만 국소성이 중요한 요인이 된다.

진화적 게임이론에서도 국소성은 협조자들이 배반자들의 갈취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는 중요한 요인이다. 2인 죄수의 딜레마 게임에서 두 행위자가 모두 배반하는 것이 각 행위자에게는 최선의 선택이다. 하지만 두 행위자가 모두 협조할 때의 총 이익은 모두 배반할 때의 총 이익보다 크며 이로 인해 협조 전략이 선호될 가능성이 있다. 여러 행위자들이 게임을 한다고 할 때, 국소성이 없는 경우 배반자는 더 많은 협조자들을 만나 갈취함으로써 자신의 이익을 높일 수 있고 '진화적으로' 자손을 더 번식하거나 자신의 전략(배반)을 더 많이 전파시킬 수 있다. 순식간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배반 전략을 택하게 될 것이다.

국소성이 도입된다면, 협조자들의 커뮤니티에서는 서로 협조함으로써 서로 배반하는 행위자에 비해 더 높은 이익을 얻으므로 협조 전략을 유지/전파시킬 수 있다. 또 특정한 상호작용 구조에서는 이 협조자들이 주변의 배반자들을 만났을 때에도 커뮤니티 내의 협조를 통해 배반자들보다 더 높은 이익을 얻음으로써 배반자들을 물리칠 수 있다. 여기서도 상호작용의 국소성이 경쟁/선택 압력을 완화시킴으로써 2인 게임에서는 불리한 협조 전략이 전체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게 된다.

내가 연구했던 구조모형(rescue model)에서도 도움 효율(helping efficiency)을 도움의 성공률을 연결망 밀도로 나눈 것으로 정의할 때, 효율이 가장 큰 경우가 각 행위자가 자신의 양 옆 두 사람하고만 상호작용할 때였다. 그래야만 확실한 신뢰관계를 바탕으로 관계 유지 비용이 줄어들고(실속 없이 여러 사람을 만나는 것에 비하면 비용이 줄어든다) 또한 서로 더 잘 도와줌으로써 도움의 성공률도 높아진다. 여기서도 국소성이 더 협조적인 세상을 만드는데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 엿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국가간의 무역을 보자. 보호무역은 자국의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정부가 여러 관세/비관세 장벽을 만듦으로써 경쟁/선택 압력을 약화시키는 상황이다. 그래야만 타국의 발달된 산업으로부터 자국의 발달되지 않은 산업을 보호할 수 있다. 장하준 교수의 <사다리 걷어차기>를 조금씩 읽고 있는데 지금 자유무역을 외치는 선진국들도 그들이 선진국이 되기까지는 보호무역을 고집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그렇다면 왜 그들은 지금 자유무역을 외치고 있는가. 자신들이 경쟁력을 갖추었기 때문에 경쟁에서 우위에 있을 수 있고 또한 시장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물론 실제로 그렇게 일방적이기만 한 것은 아닐 것이다. 어쨌든 여기서도 '국소성'이 한 나라의 산업발전을 위해 (철저하게) 추구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정보통신/교통의 발달로 세상은 점점 좁아지고 경쟁/선택 압력은 점점 높아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더 협조적인 세상'을 만들기 위해 '국소성'을 주장하는 것은 대세에 역행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경쟁/선택 압력을 낮추자고 하는 것은 나만의 밥그릇 챙기기(내 밥그릇은 어디 있더라...)로 비난받을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이 이미 경쟁만이 최선이라는 사고방식에 젖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우리가 어떤 목적과 방향을 지향하느냐에 따라 적절한 정책과 전략을 세울 수 있다. 내가 생각하는 한 가지 원칙은 권력에 비례하는 경쟁/선택 압력을 실현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더 생각을 해봐야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