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의 건드림이론(perturbation theory; 섭동이론)을 공부할 필요가 있어서 학부 때 배웠던 양자역학 교과서를 펼쳐들고 공부를 좀 했습니다. 문제가 주어지면 정확히 풀면 가장 좋지만, 정확히 풀기가 힘든 경우에 어림/근사로 푸는 방법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고보니 수학을 좋아하는 어떤 분이 '평균장어림 이론(mean field approximation theory)'에 대해 '어림'한 게 무슨 '이론'이냐.고 얘기하시던 게 생각나네요. 그냥 물리에서는 이론으로 쳐줍니다.ㅋㅋ

그런데 아무거나 다 건드림이론을 적용할 수 있는 건 아니고, 답을 정확히 구해서 다 아는 어떤 시스템을 '살짝' 건드렸을 때 시스템이 어떻게 변하는가를 보는 경우에만 쓸모 있는 방법입니다. 다음과 같은 시스템을 생각해봅시다.


H_0은 건드리기 전의 어떤 시스템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이 시스템이 갖는 에너지(E_n^(0))와 그 에너지에 해당하는 상태(|n^(0)>)들이 모두 알려져 있다고 가정합니다. (사실 이런 건 행렬로부터 고유값과 고유벡터를 구하는 문제입니다.) n은 시스템이 가질 수 있는 어떤 상태들에 붙여진 일렬번호입니다. 이 시스템을 λV만큼 살짝 건드려줍니다. λ가 0보다 크되 1보다는 아주 작은 값이라고 합시다.


그럼 이 새로운 H가 갖는 에너지(E_n)와 상태(|n>)들은 어떻게 될까요?가 질문입니다. 예를 들어 H_0을 '공부'라고 합시다. 그러면 일을 하는 상태(n=1이라고 하고 |1>로 나타냅시다)도 있고 빈둥빈둥 노는 상태(|0>)도 있겠죠. 일하는 상태에서는 에너지가 높을 거고(E_1>0), 노는 상태에서는 에너지가 낮을 겁니다(E_0=0).

여기에 '잡일'이라는 V가 살짝 가해졌다고 합시다. 이제 H는 '공부+잡일'입니다. 잡일이 없을 때와는 다른 상태와 다른 에너지를 가질 거라고 예측할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잡일을 해야 하므로 에너지도 조금 높아질테고, 그에 따라 상태도 '일하면서 노는 상태'처럼 여러 상태가 섞일 수도 있습니다.(사실 정확한 비유는 아니지만;;;) 대략 이런 정도로 위에 쓴 식들을 이해한다고 치고, 얘기해보겠습니다.

그럼 다음과 같은 가정을 합니다.


λ를 0으로 보내면 건드리기 전의 고유값(E_n^(0))과 고유벡터(|n^(0)>)가 된다는 걸 알 수 있죠. 이제 H|n>=E_n|n>에 이 식들을 집어넣고 λ에 따라 전개합니다. 그니까 λ가 없는 항들끼리 묶고, λ에 비례하는 항들끼리 묶고, λ의 제곱에 비례하는 항들끼리 묶습니다. λ가 없는 항은 건드리기 전의 결과와 똑같으므로 생각할 필요가 없고, 나머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수식 쳐넣기 정말 귀찮네요;;; 참고로 수식은 LaTeX으로 쳐넣으면 그림으로 이쁘게 출력해주는 sitmo 싸이트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위 식에서 λ의 경우 식 전체 왼쪽에 <n^(0)|를 곱해주고 정리하면 E_n^(1)을 얻을 수 있습니다.


가만히 있는 시스템을 살짝 건드렸을 때 변하는 에너지를 λ에 대한 1차까지 구한 결과입니다. 다음으로 λ에 대한 2차까지 구하려면 위의 λ 제곱에 해당하는 항들을 모아놓은 식을 풀어서 E_n^(2)를 얻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n^(1)>도 알아야 하는데요, 이에 대해서는 다음처럼 가정합니다.


즉 건드리기 전 고유벡터의 선형 결합으로 나타낼 수 있다고 하는 겁니다. 자연스러운 가정이죠. 이제 그 계수인 a_nk들을 알아야 하는데, 이번에는 λ에 관한 1차항들 전체 왼쪽에 임의의 l에 대한 고유벡터 <l^(0)|를 곱해서 정리해줍니다. 그러면 a가 나옵니다. 이제 |n^(1)>도 알았으니, 이제 λ에 관한 2차항을 정리한 식 왼쪽에 <n^(0)|를 곱해서 정리해주면 다음과 같은 결과가 나옵니다.


E_n을 알고 싶은 건데, E_n^(0)은 원래 알고 있다고 가정했고, 나머지 E_n^(1)과 E_n^(2)까지 구했으니 λ에 관한 2차항까지 구한 겁니다. 이렇게 변화된 에너지를 λ의 2차항까지 구했고, 변화된 상태도 λ의 1차항까지(|n^(1)>) 구했습니다. 물론 이런 과정을 반복해서 원하는 λ의 차수까지 다 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걸 다시 '공부+잡일'로 해석하면 어떻게 될까...를 조금 고민해보았으나 뭐라 말해야 할지 잘 모르겠네요. 여러 가지 특성이 있겠지만, 건드린 고유상태는 안건드린 고유상태들이 섞여서(또는 간섭을 일으킨 형태로?) 나타난다고 할 수 있겠네요. 잡일로 인해 노는 상태도 아니고 일하는 상태도 아녀...라는 애매한 상태가 되었다고 할까요;;;

지금까지는 얘기한 건 두 가지 전제가 깔려 있었는데요, 하나는 H_0이 에르미트(Hermitian; self-adjoint)라는 겁니다. 다른 하나는 H_0의 고유값들이 모두 서로 다르다는 겁니다. 이 두 가지 조건 중 적어도 하나가 성립되지 않으면 위의 결과들이 조금씩 다 달라져야 합니다. 그럼 4가지 경우가 가능해지겠죠.

1) 에르미트, 고유값이 겹치지 않는 경우
2) 에르미트, 고유값이 겹치는 경우
3) 비에르미트, 고유값이 겹치지 않는 경우
4) 비에르미트, 고유값이 겹치는 경우

교과서(Bransden & Joachain)에서는 1번은 자세히 다루고, 2번은 앞부분까지만 다루고 나머지는 1번처럼 하면 된다고 하고 끝나고요, 3, 4번은 아예 다루지 않습니다. 하지만 조금씩만 손을 보면 3, 4번에 대한 답도 얻을 수 있습니다. 나중에 얘기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