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밤에는 잠이 오지 않더군요. 어제 저녁에 마신 커피때문이었나 봅니다. 침대에 누워 이리 뒹굴 저리 뒹굴하면서 머리 속에는 요즘 연습삼아 풀고 있는 문제들과 어제 저녁에 본 논문에 대한 코멘트와 아직 미루고 있는 시늉내기 방법 등이 떠올라서 결국 다시 불을 켜고 공책에 이것저것 적어넣었습니다.

아, 그러니까 침대에 눕기 전에 오랜만에 재미있는 생각이 떠올랐는데요, 이를테면, <파운데이션>의 해리 셀던이 아직 자신의 논문을 발표하기 이전, 아니 학위를 받기도 이전 학생일 때 혼자 떠올렸을 법한 아이디어라고나 할까요. 그가 떠올린 방정식은 '세계방정식(world equation)'이라 불리며, 일단 확률과정에서 쓰이는 으뜸방정식을 그 기반으로 한다...면 어떨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미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 듯 하네요. 'world equation'으로 구글링을 하니 이 제목의 경제학 논문(2001년)이 있더라는;;; 또한 '심리역사학'으로 찾아보니 Astral님의 글을 발견했습니다. 어쨌든 시작합니다;;

우선 이 세계가 디지털이라고 가정합니다. 즉 0과 1로만 이루어진 요소들의 집합체라는 거죠. 이 요소가 N개 있다고 하면 모두 2^N가지 가능한 상태가 존재합니다. 세계가 그 중 하나의 상태에 있다가 다른 상태로 전이할 수도 있겠죠. n이라는 상태에서 m이라는 상태로 전이하는 비율을 W_mn이라고 하겠습니다. 세계가 시각 t에 상태 n에 있을 확률은 P_n(t)로 쓰겠습니다.

그럼 이미 여러번 썼듯이, 이 세계의 변화를 기술하는 으뜸방정식은 아래처럼 나타낼 수 있습니다.


초기조건, 즉 P_n(0)은 세계가 시작된 순간의 상태를 뜻하고, W_mn은 이 세계의 작동원리를 뜻합니다. 우리가 이 모든 정보(초기조건과 작동원리)를 알고 있다면 위 식을 적분함으로써 미래, 즉 P_n(t)를 예측할 수 있겠죠.

이 세계는 매 순간 어떤 특정한 상태에'만' 존재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은 여러 상태에 걸쳐서 확률적으로 존재할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 맞는지를 떠나서 좀더 일반적인 가정은 여러 상태의 선형결합(중첩)으로 세계를 기술할 수 있다는 거죠. 즉 특정한 상태 n에 있을 확률뿐만 아니라 가능한 모든 상태에 있을 확률을 다 구해야 합니다. 물론 그 확률들의 합은 1이어야겠죠. 간단히 다음처럼 쓰겠습니다.


P_n(t)를 모든 n에 대해 더해주면 1이라는 조건이 붙고요, P_n(t)를 일렬로 나열해서 벡터로 표시한 게 위의 왼쪽입니다. 이걸 간단히 계수가 P_n(t)인 단위 벡터들 |n>의 합으로 표현할 수 있고, 단위 벡터들은 위에서 n번째 행만 1이고 나머지는 모두 0을 원소로 갖는 벡터입니다.

전이율 W가 시간에 따라 변하지 않는다고 가정하면요, 행렬 W의 고유값과 고유벡터를 구할 수 있고 그럼 |P_t>를 고유벡터들로 다시 나타낼 수 있습니다. 그것도 이미 이전 글들에서 썼죠.


역시 이미 썼듯이 모든 λ는 0보다 작거나 같고, 0인 λ가 적어도 하나 존재합니다. 초기조건, 즉 세계가 시작한 순간(t=0)은 아래 왼쪽처럼 쓸 수 있습니다. 그럼 시간이 무한히 흐른 후에는 어떻게 될까요? 아래 오른쪽처럼 쓸 수 있습니다. 즉 고유값이 0이 아닌 고유벡터는 모두 사라져버립니다.


정리하면, 세계의 작동원리인 행렬 W로부터 고유값과 고유벡터를 구한 후에, 초기조건 c_λ(0)을 넣어주면 세계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고 결국 세계의 끝(무한한 시간이 지난 후)이 어떤 모습일지도 알 수 있습니다. 많은 가정과 중간단계와 조심할 점들을 생략하고;;; 결론만 썼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는 세계의 모든 것을 알 수 없다는 거죠. 일단 N이 엄청나게 큰 수일 뿐만 아니라, 초기조건과 작동원리를 안다고 쳐도 그로부터 고유값과 고유벡터를 구하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어쨌든 그나마 여기까지 올 수 있게 해준 가정과 결과들을 잠깐 다시 생각해보겠습니다.

(1) 행렬 W는 시간에 따라 변하지 않는다고 가정했습니다. 즉 세계의 작동원리는 정해져 있다는 말입니다. 또한 이 행렬의 원소들은 '전이율' 즉 확률과정으로 정의됩니다. 다시 말해서 이 세계는, 또한 이 세계의 미래는 '확률적으로 결정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이미 말했듯, W는 세계의 작동원리이며 모든 법칙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 비가역성은 W_mn >> W_nm 으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 어떤 상태들은 일단 빠져나오면 다시 돌아갈 수 없을 수도 있습니다. 이로부터 '과도상태'와 '재귀상태'를 구분할 수 있습니다. 또한 비슷한 맥락에서 '흡수상태'도 정의할 수 있습니다. 흡수상태에 빠진다는 것은 영원한 죽음을 의미하는 거겠죠.

(2) 0보다 큰 고유값에 해당하는 고유벡터는 언젠가는 모두 사라집니다. 즉, 이 세계는 끊임없이 고유값이 0인 고유벡터의 상태로 무너져내리고 있습니다. 붕괴는 필연입니다.

- λ가 0에 가까울수록 장기적인 행동을 의미하며 λ가 0으로부터 멀어질수록 단기적인 행동을 의미합니다. 행렬 W를 직접 모르더라도 관찰에 의해 어떤 현상을 지배하는 λ를 대략이라도 파악할 수 있다면 좋겠지요.

쓰다보니 하나마나한 소리가 되어버렸고, 사실 원래 그렇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는;;;; 어쨌든 인간의 인식 한계는 다음처럼 표현할 수 있습니다.


오늘 끝내버려야겠다고 생각한 일을 다 못끝냈는데, 너무 컴퓨터 앞에 오래 앉아 있었더니 어깨가 아프네요. 나중에 생각나면 더 써보도록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