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7/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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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확실하지 않지만, 인터넷 서점 싸이트 대문에서 처음 봤던 것 같다. 제목을 보자마자 눈에 쏙 들어왔고 (아마도) 주저없이 주문을 했고 주로 지하철에서 이동하면서 읽다가 어제밤에서야 끝을 냈다. 2007년 1월 2일 초판 발행.이니 아주 따끈따끈한 책이다. 그런데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오탈자와 간혹 보이는 어색한 번역, 게다가 몇개 되지도 않는 수식에 오류가 있어서 책에 대한 신뢰가 급격히 떨어졌다. [이 부분들을 수정한 개정판이 나왔는지 아직 확인해보지 못했다. - 2007/04/26] 그렇다고 해도 무척 흥미롭게 읽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도모노 노리오의 <행동 경제학(Behavioral Economics)>은 간단히 말해서 '경제학 + 심리학'이며 방법론으로서의 '실험 경제학'과 통하는 부분이 많지만 그것과는 다르다. 저자는 이기적이며 합리적이고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행동하는 '경제적 인간'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으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한된 합리성'을 갖고 있으며 감정적이고, 사회규범 등에 영향을 받으며 때로는 굉장히 모순된 행태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다양한 실험 사례를 통해 보여주며 이러한 행태를 설명하기 위해 제시된 여러 이론들을 소개하고 있다.

경제적 인간이 합리적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사실에 근거하여 일정한 판단기준에 따라 이익을 최대화할 수 있는 선택을 해야할 것이다. 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사실'에서조차도 사람들 각각의 선호에 따라 다르게 인식/기억되며 특히 그러한 판단을 위한 시간적/물질적 자원이 충분하지 않다면 생각나는대로 생각해버리게 되고 잘못에 빠질 가능성이 커진다.

한 실험에서 실험 대상자들은 소설의 4쪽 분량(약 2000 단어)에서 7문자로 된 단어 중 어미가 ing로 끝나는 것의 개수와 역시 같은 소설의 7문자로 된 단어 중 6번째 문자가 n인 것의 개수를 답해야 했다. 전자에 대한 실험 대상자들의 반응은 평균 13.4개, 후자에 대한 것은 평균 4.7개였다. 그런데 ****ing의 개수는 *****n*의 개수보다 당연히 적어야 하는데 사람들은 머리에 쉽게 떠오르는 것이 더 많다고 생각하여 이러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이러한 예는 무수히 많으며 우리 일상에서도 종종 관찰되는 일이다. 그리고 이러한 효과는 이익과 손해가 분명해보이는 상황, 즉 경제 활동에서도 나타난다는 것이다.

인간의 주먹구구식 사고방식을 '휴리스틱'이라고 하며 '제한된 합리성'의 중요한 근거로 제시된다. 위의 실험은 이용가능성 휴리스틱의 예이며 쉽게 알 수 있는, 이용가능한 사례(즉 최근의 사례나 현저한 예 등)를 판단의 기초로 삼는 방법이다. 이외에도 '기준점과 조정'이라는 휴리스틱이 있는데 불확실한 사건에 대해 예측할 때 처음에 어떤 기준점을 설정하고 그로부터 조정을 통해 예측치를 확정하는 방법이다. 상품을 살 때 적정한 가격에 대한 감이 없다면, 희망소매가격 10000원, 판매가격 8000원이라는 표시를 본 후에는 10000원이 기준점으로 설정되어 판매가격이 싸게 느껴지는 효과가 생긴다.

다음으로 이 책은 인간의 심리와 경제적 판단에 관한 프로스펙트 이론을 소개한다. 주류경제학의 효용함수에 대응하는 가치함수(value function)는 준거점(앞의 기준점과 비슷한 의미인 것 같다)에 대해 이득이면 +의 가치를 느끼고 손실이면 -의 가치를 느낀다는 것을 함수형태로 나타낸 것이다. 사람은 절대적인 효용이 아니라 준거점을 기준으로 한 상대적인 가치에 의해 행복/불행/만족/불만을 느낀다는 것이다. 또한 효용함수의 한계효용체감과 비슷하게 가치함수에는 민감도 체감성(diminishing sensitivity)이 있어서 준거점으로부터의 이득이 많아질수록 한계이득에 의한 가치는 더 천천히 증가한다. 마지막으로 준거점으로부터의 이득과 손실은 비대칭적이며 특히 사람들은 손실에 대해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데 이를 손실회피성(loss aversion)이라 한다. 이러한 비대칭성은 주식시장에서도 나타나며 진화론과도 연관지을 수 있을 것 같다.

가치함수와 더불어 중요한 함수가 하나 더 있는데 확률가중함수(probability weighting function)이다. 기존의 기대효용 이론에서는 x라는 사건이 일어날 확률p에 x의 효용을 곱하여 기대효용을 결정했다. 프로스펙트 이론에서는 어떤 사건에 대한 객관적 확률조차 변형되어 주관적으로 인식된다는 주장을 하며 이 변형은 확률가중함수로 표현된다. 사람들은 낮은 확률로 발생하는 사건에 대해 그 확률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으며, 높은 확률로 발생하는 사건에 대해 그 확률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도 실험적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대략 실제 확률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것은 대략 0.35 근처라고 한다. (즉 0.35의 확률로 일어나는 사건은 더도 덜도 아니고 0.35로 인식한다.) 또한 이보다 낮은 확률에서 확률가중함수는 위로 볼록하고 이보다 높은 확률에서 확률가중함수는 아래로 볼록한 모양이다. 책 118쪽에 확률가중함수가 수식으로 정의되어 있는데 내가 위에서 오류가 있다고 한 바로 그 식이다. 참고문헌을 인터넷으로 찾아본 후 제대로 고쳤다.

다음 장에는 이 이론의 응용을 소개하고 있는데 여기서 정의된 함수를 어떻게 이용했는지는 잘 모르겠고 위 함수들을 정의하는데 필요했던 개념들을 이용하여 다른 사례들을 분석하고 있다. 보유효과는 소유하고 있던 물건을 파는 것을 손실로, 그것을 사는 것을 이익으로 느끼는 현상, 물건을 사기 위해 내는 돈은 손실로, 그것을 팔아 얻은 돈은 이익으로 느끼는 현상을 가리킨다. 손실회피성을 감안한다면 소유하고 있는 물건에 대한 집착이 생기는 것이 설명된다. 이외에도 계속되는 장에서 프레이밍 효과, 선호, 시간효과 등에 대한 설명이 이어지는데 더 자세히 정리하고 싶지만 귀.찮.아.지.고.있.다.

8장에서는 행동 경제학에서 게임이론과 협력행동의 진화에 관한 최근의 연구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최정규 교수님의 <이타적 인간의 출현>에서 읽은 내용들 중 실험에 관한 부분을 복습하고 업데이트하는 느낌이었다. 9장에서는 신경경제학이라 부를 수 있는 내용이 나오는데, fMRI 등을 이용하여 경제활동을 할 때 활성화되는 뇌의 부위에 대한 분석으로부터 인간의 경제활동을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효용이라는 개념부터 여기 소개된 가치함수나 확률가중함수 등은 인간의 심리현상을 정량화하고 이를 통해 현상을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내가 논문으로 썼던 구조모형(rescue model)에서도 '위급 상황에 기꺼이 개입하려는 정도'를 수식으로 정의하여 썼는데 크게 비슷한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내가 수식을 어느 정도 임의로 정의했다면 이 책에 나온 함수들은 일정 부분 실험을 통해 얻어진 것이므로 좀더 탄탄한 기반 위에서 (어쨌거나)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앞에서도 썼듯이 이 책은 경제적 인간은 존재하지 않으며 제한된 합리성과 감정을 가진 인간이 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혼동하지 말아야 할 것은 '제한된 합리성'이 합리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감정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행동의 걸림돌이 되기도 하지만 감정이 없는 이성 역시 생각하기 힘들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그런데 여전히 나에게는 감정을 다루고 이해하는 것이 어렵다. 어려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