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발표를 위해 예전에 쓴 글을 찾아보다 여기에도 올립니다. 링크를 수정했고,  holism을 '전체주의'로 옮겼다가 '전일주의'로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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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06/10

발현을 얘기하면서 환원주의를 빼놓을 수 없다. 스탠포드 철학백과사전(http://plato.stanford.edu)에서 '발현 현상'에 대해 말한 것을 보자.

발현하는 실재(성질 또는 물질)는 더 근원적인 실재로부터 '비롯되지만' 그것들에 비해 여전히 '새롭고' 또한 그것들로 '환원될 수 없다'.
Emergent entities (properties or substances) 'arise' out of more fundamental entities and yet are 'novel' or 'irreducible' with respect to them.

이렇게 환원가능성의 문제는 발현을 얘기할 때 핵심적인 문제다. 환원 또는 환원주의에 대한 논문을 몇 개 찾아보았다. Hanne Andersen의 <과학연구에 대한 환원주의 대 전일주의 접근의 역사>[1]는 환원주의 논쟁을 간략히 정리한다.

조지 루이스(George Henry Lewes)는 발현 현상이 우리의 현재 이론에 의존한다고 했다. 즉 수소와 산소가 결합하여 물이 되는 메커니즘을 모를 때는 그것을 발현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 메커니즘이 밝혀진 후에는 발현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인간의 지식이 확장될수록 발현 현상은 줄어든다는 것인데, 그럴 수도 있겠지만 너무 재미없다.

환원을 몇 가지로 나누기도 하는데, 존재론적 환원, 인식론적 환원 등이 있다. 존재론적 환원(ontological reduction)이란 한 영역의 실재가 다른 영역의 실재들로 구성되는지에 관한 것이다. 생물체가 물리화학적 물질들로만 구성되어 있다면 존재론적 환원이 가능할 것이다. 생기론자의 경우 생물체에만 있는 특별한 힘이 있다고도 한다. 이런 것은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다.

인식론적 환원(epistemological reduction)이란 한 영역의 법칙이나 이론이 다른 영역의 법칙이나 이론으로부터 유도될 수 있는지에 관한 것이다. 이를테면 열역학 법칙이 통계역학 법칙으로부터 유도될 수 있는가, 또는 고전역학이 상대성이론으로부터 유도될 수 있는가이다. 후자의 경우는 상대성이론이 더 일반적인 이론이며 고전역학은 그것의 특수한 경우(물체의 속도가 빛의 속도보다 매우 작은 경우)에 해당한다는 것이 알려져 있다. 전자의 경우는 잘 모르겠다.

위의 두 환원과는 또 다른 관점에서 환원이 분류되는데 연속적 환원과 수준간 환원이 그것이다. 연속적 환원(successive reduction)이란 같은 영역에서 나타난 역사적으로 연속적인 이론들 사이의 관계를 말한다. 고전역학과 상대성이론은 같은 대상을 다루고 있다. 수준간 환원(interlevel reduction)은 복잡성의 수준이 서로 다른 이론들 사이의 관계를 말한다. 생물학적 유기체 수준의 이론과 분자 수준의 이론 사이의 관계가 그 예이다.

대개 철학에서는 덜 근본적인 이론(2차 이론)을 더 근본적인 이론(1차 이론)으로 '환원한다'고 말하는데 과학에서는 반대로 쓰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 중의 하나가 '상대성이론이 고전역학으로 환원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상대성이론이 더 일반적인데도, 일반적인 이론이 특수한 이론으로 환원되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사실 여기서는 환원보다 '변환'이라는 의미로 reduction을 쓰는 것으로 보면 된다.

다음으로 '환원의 표준 모형'에 대해 말한다. 나겔(Ernest Nagel)이 제시한 환원의 두 가지 조건이 있다. 첫번째는 연결가능성 조건(condition of connectability)인데 1차 과학에는 없지만 2차 과학에는 있는 모든 용어들이 1차 과학의 용어들과 연관(link)되어야 한다는 조건이다. 두번째로 유도가능성 조건(condition of derivability)이다. 즉 2차 과학의 법칙들은 1차 과학의 법칙들로부터 논리적으로 유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비판들도 있는데 일단 통과.

다음으로는 전일주의(holism, 이는 전체주의totalitarianism와는 다르다)에 대한 소개가 나온다. 환원주의의 상대로 전일주의가 빠질 수 없는데 그래서 나중에 기회가 되면 전일주의에 대해서도 알아보고 싶다. 이 말을 처음 소개한 사람은 남아공의 스무츠(Jan Christiaan Smuts)라고 한다. 이후 1940년대부터 '체계이론(systems theory)'의 형태로 비슷한 개념이 발달한다.

최근의 환원주의 논쟁의 주요 이슈는 정신을 뇌로 환원할 수 있는가의 문제와 생물학을 화학으로 환원할 수 있는가의 문제란다. 특히 병을 생리적 교란의 문제로 환원할 수 있는지에 대해 생의학 관점에서는 가능하다고 한다. 우리는 병을 생리학의 문제로 보는 것에 아주 익숙하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로 일반체계이론은 조직의 모든 수준(사회적, 심리학적, 생물학적)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각 수준의 이해만으로는 시스템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주장을 펼친다. 그래서 이 모든 수준이 병의 생심리사회적 모형(biopsychosocial model)으로 결합되어야 한다고 한다. '생심리사회적 모형'이라는 말을 보며 '오우!'.

마지막으로 상대방을 경멸하고 비난하는데 '환원, 환원주의, 환원주의적 설명' 등의 말을 쓰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소개한다. 철학자 김재권의 말을 인용하는데 거의 한 문장에 하나씩 모르는 낱말이 나온다.

논문이 군더더기 없이 깔끔해서 좋다. 여러 가지 환원에 대한 좀더 자세한 설명을 알고 싶고, 또한 일반체계이론에 대해서도 알아보고 싶다.


* 참고문헌
[1] Hanne Andersen, The history of reducionism versus holistic approaches to scientific research, Endeavour 25, 153-156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