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제목에서 '임계'를 뺀 원래 카시미르 효과(Casimir effect)는 1948년 카시미르가 처음 제안한 것으로서 양자현상입니다. 진공에 전도체인 두 판을 평행하게 놓되 매우 가까이 놓으면 고전적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겠지만, 두 판 사이의 양자요동에 의해 인력이 발생한다고 합니다. (고전적으로도 반데르발스 힘이 생기기는 하지만 카시미르 효과를 설명하지는 못한다네요.)

양자요동은 어디에나 있지만, 두 판 사이의 그것은 두 판에 의한 '경계조건'으로 인해 두 판 사이의 거리에 의존하는 특정한 정상파로서만 존재할 수 있고 이게 카시미르 효과의 원인입니다. 두 판 바깥의 요동은 제한이 없지만, 두 판 사이의 요동은 제한되므로 이러한 차이가 두 판 사이의 인력으로 작용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위의 위키피디아 링크를 참고하세요.

이 글에서 말하려는 '임계 카시미르 효과'는 고전적인 임계상태에 의한 효과입니다. 여기서는 두 판 사이에 임계상태인 물질을 채움으로써 카시미르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이외의 다양한 방법으로 카시미르 효과를 볼 수 있고 작년에는 카시미르 효과를 '직접' 측정한 연구가 <네이처>에 발표되기도 했습니다.)

임계상태인 물질의 상관길이는 무한대인데 양 옆의 두 판이 '경계조건'으로 작용하여 상관길이가 두 판 사이의 거리에 의해 제한받습니다. 다시 말해서 두 판 사이의 거리에 의존하는 힘이 나타나고 이건 임계상태에서만 나타나므로 '임계 카시미르 힘'이라 부릅니다.

임계상태가 아니라면 상관길이가 짧으므로 입자 사이의 모든 상호작용은 국소적/미시적이며 두 판 사이의 거리라는 거시적인 양이 고려될 필요가 없습니다. (물론 에너지는 물질의 부피에 비례하므로 두 판 사이의 거리에도 비례하지만 이건 당연히 고려되는 거고, 이외에는 고려될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좀더 명확히 하기 위해 부피로 나누어준 에너지, 즉 에너지 밀도를 이용합니다.)

키워드로 정리하면, 임계상태 → 먼거리 상호작용(무한대인 상관길이) → 경계조건(두 개의 평행한 판)에 의한 제한 → 두 판 사이의 거리에 의존하는 먼거리 힘 → 임계 카시미르 효과.라는 겁니다. 아예 한 마디로 정리하면, 그냥 유한크기 눈금잡기(finite size scaling) 효과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하나 더 말하면, 두 판 사이의 물질이 두 판과 어떤 경계조건에 놓이느냐에 따라 임계 카시미르 힘의 부호가 달라질 수 있다고 합니다. 즉 끌어당기는 힘일 수도 있고 밀어내는 힘일 수도 있습니다. 이는 공학적으로도 중요한데 나노기계의 각 부분들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만 한다면 이를 어떻게 구현할거냐라는 문제가 있다고 합시다. 임계 카시미르 현상은 그에 대한 답을 줄 수도 있다고 합니다.

경계조건의 성질에 따라 임계현상이 영향을 받는 문제는 이론적으로도 중요한 일입니다. 또한 여기에 유한크기 눈금잡기 문제까지 겹쳐 있고... 이런 문제들에 대한 좀더 일반적인 접근이 필요한 것도 당연하겠죠.

According to present knowledge the Casimir effect is a phenomenon common to all systems characterized by fluctuating quantities with external constraints.
- M. Krech, <The Casimir effect in critical systems> p. 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