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4/11/01

산에 가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산은 프랙탈 구조를 하고 있다. 즉 일부를 확대해보면 전체와 비슷한 모양을 보여준다. 금강산이 일만이천봉이라 했나, 그건 인간의 관점이고, 우리가 봉우리 1개라고 한 것을 개미가 본다면 거기서도 수백~수천개의 봉우리를 찾아낼 수 있다. 그런데 인간보다 훨씬 큰 괴물이 금강산을 보면 그냥 수십개의 모래더미가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개미의 눈으로 보든, 인간의 눈으로 보든, 괴물의 눈으로 보든 비슷비슷하게 생겼을 것이므로 프랙탈이라고 할 수 있다.

프랙탈 구조의 특징 중의 하나는 '특정한 규모(scale)가 없다'는 것이다. 계단을 생각해보자. 다리가 긴 사람이 아기들을 위한 계단을 걸어가기는 힘들 것이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로 힘들 것이다. 즉 산을 오르는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만의 규모(대충 자신의 다리 길이에 비례하는)를 갖고 있다. 그런데 계단을 설계할 때 모든 사람의 규모에 적합한 계단을 만들 수는 없다. 그래도 대충 '표준'이라는 것을 정해놓고 만드는 것일게다.

하지만 산에는 특정한 규모가 없다. 다시 말해서 그 누구라도 산을 오를 때는 자신만의 규모에 맞는 길을 선택하여 갈 수 있다. 다리가 짧으면 짧은대로 길면 긴대로 개미가 산을 오르든, 괴물이 산을 오르든 자신만의 보폭에 맞는 길을 찾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뜻에서 '평등'이라 했다.

물론 그 모든 길이 존재해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 누구도 건너갈 수 없는 절벽이 있을 수도 있고 보폭에는 맞는 길인데 그 자리에 가시덤불이 자리잡고 있을 수도 있을테니까 말이다.

앞에서 계단 얘기를 했는데, 특정한 규모가 없는 계단(굳이 영어로 나타내보자면 scale-free stairway가 되려나.)을 설계해봄직 하겠다. 다리가 길든 짧든 누구나 자신의 보폭에 맞춰서 걸어 오르내릴 수 있는 그런 계단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