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6/02/10  [스포일러 포함되어 있습니다. 주의하세요.]

연구중에 짬을 내어 글을 쓴다. 내가 본 것은 만화가 아니라 애니. 지난 주 초쯤 보기 시작했나보다. 그리고 어제 다 봤다. 재미도 있었지만 재미뿐만 아니라 다루는 주제들이 그리 가볍지 않았다. 특히 과학자의 윤리라는 관점에서 애니가 시사하는 바가 있는데 이 얘기를 써볼까 한다.

주인공인 에드와 알 형제(에드워드 에릭, 알폰스 에릭)는 1910년대의 연금술사다. 이들은 물질의 성분을 분석, 해체, 재결합함으로써 물질의 성질을 변형시키는 기술을 가진 과학기술자다. 물론 그들은 연성진을 써서 연금술을 한다는 면에서 현대적인 의미의 과학기술과 다르지만 그 본질은 다르지 않다고 본다. 이들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앞에서 자신들의 연금술을 이용하여 그들을 살려내고자 한다. 금기시되어온 인체연성. 바로 이 지점에 현대의 생명공학기술과 생명윤리 문제가 이어져 있다. 인체를 대상으로 한 연금술은 곧 생명공학이며 그것이 가져올 위험성과 사회적 영향은 애니 속의 문제만이 아니다.

에드와 알 역시 병으로 죽은 엄마를 살려내고자 인체연성을 시도하지만 실패한다. 그 과정에서 알은 온 몸을 잃고 에드도 오른팔을 잃는다. 알을 살려내기 위해 에드는 자신의 왼쪽 다리를 바쳐 알의 영혼을 옆에 있던 철갑옷에 결합시킨다. 연금술의 원칙은 '등가교환'인데 이는 질량보존의 법칙으로 이해할 수 있다. 뭔가를 얻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대가를 치뤄야 한다는 것으로 죽은 엄마를 살려내기 위해, 알의 영혼을 철갑옷에 결합시키기 위해 그들은 그만큼의 대가를 치뤄야 했다. 하지만 그들이 살려낸 엄마는 엄마가 아니었으며 흉칙한 괴물일 뿐이었다. 이때 그들의 나이는 11살, 10살.

이들은 잃어버린 팔과 다리, 그리고 몸을 되찾기 위해 '현자의 돌'을 찾아나선다. 그것만이 이들의 잃어버린 육체를 되찾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었다. 에드는 이를 위해 '군의 개'인 국가연금술사가 되었고 동생 알과 현자의 돌을 찾는 여행을 통해 많은 것을 보고 배운다. 연금술이 현자의 돌이 무고한 사람을 죽이는데 쓰이고 거짓으로 진실을 가두는데 쓰이는 것을 본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경험을 통해 그들은 점점 진실에 다가간다...

연금술사들이 금기시되어온 인체연성을 시도할 때마다 호문쿨루스(homunculus)가 태어난다. 호문쿨루스는 '작은 인간'이라는 뜻으로 연금술사 파라켈수스의 문헌에서 처음 나타났다고 한다. 그에 따르면 정액을 놔두면 부패하고 생명체처럼 움직이는데 이는 투명하고 육체가 없는 형태라고 한다. 이것은 교육을 받을 수도 있고 지능을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은 인간이라기보다는 영혼에 가깝다. <강철의 연금술사>에 나오는 호문쿨루스들은 육체는 있지만 (에드에 의하면) 영혼은 없는 움직이는 인형에 불과하다. 호문쿨루스들은 저마다 굉장한 능력이 있어서 웬만해서는 죽지 않고 죽더라도 이들이 먹은 현자의 돌만큼 되살아날 수 있다. 그럼 누가 이들에게 현자의 돌을 주었는가.

애니의 후반부가 되어서야 이 호문쿨루스들을 조종하는 인물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이미 400년 전에 인체연성에 성공한 연금술사(에드와 알의 아빠인 일명 '빛의 호헨하임')와 그의 애인(단테)이 육체를 바꿔가며 살아온 것이다. 육체를 바꿀 때마다 현자의 돌이 필요하며 현자의 돌도 쓸수록 닳아 없어진다. 그래서 현자의 돌을 계속 만들어내야만 한다. 현자의 돌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그것은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바쳐야만, 수많은 사람들의 분노와 원한 등이 있어야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이때문에 단테는 호문쿨루스들을 데려다가 키워주고 인간으로 만들어주겠다고 꼬셔서 인간 사회에 전쟁이 끊이지 않도록 조종하게 한다.

이러한 비밀을 알게 된 에드와 알은 현자의 돌을 만들어 자신들의 몸을 되돌리려는 꿈 앞에서 좌절한다. 다른 사람을 희생하지 않고도 자신들의 꿈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지만 그것은 불가능해보인다. 에드와 알은 마침내 호문쿨루스를 조종하는 인물을 만나 현자의 돌에 관한 모든 것을 파괴하려고 한다. 그들에게는 다른 이들의 목숨과 맞바꾼 행복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애니에는 다양한 모습의 연금술사들이 나온다. 단지 호기심으로 연구를 하는 사람, 전쟁에서 이기는 것만이 목적인 사람, 그런 연금술이 싫어서 도망친 사람, 전쟁에서 상부의 명령에 따라 사람을 죽이고 괴로워하다가 부조리한 명령을 받지 않아도 되는 최고의 자리에 오르려는 사람, 연금술로 사람들을 현혹하여 등쳐먹는 사람 등. 사기꾼, 악인들을 제외하면 저마다 나름의 해답을 찾아 노력하기는 하는데 문제의 핵심에 다다른 사람은 주인공인 에드와 알 형제뿐인 것 같다. 이들은 현자의 돌을 찾는 과정에서 권력과 결탁한 과학기술의 폐해를 목격하고 그런 것이 존재하는 한 인간은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현자의 돌은 궁극의 연금술을 위해 필수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점은 현자의 돌을 가진 사람은 '등가교환의 법칙'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미 말했듯이 현자의 돌 자체가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맞바꿔야 얻을 수 있는 것이기는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을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을 담보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인간은 그 전의 인간, 사람들이 그토록 살려내고 싶어하는 사랑하는 사람은 아닌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졌다고 해서 또 인간이 아니라고 보기는 힘들 것 같다.

호문쿨루스들은 '실패한 인간'들이지만 이들에게는 이들을 만들고자 했던 연금술사들의 기억이 남아있다. 오히려 그렇기때문에 이들은 진짜 인간이 되고 싶어하면서도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 확신하지 못한다. 특히 러스트(호문쿨루스 중 하나)는 자신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 회의하며, 단테가 인간으로 만들어주겠다고 하는 약속을 의심하고 그로부터 벗어나려고 한다. 그리고 러스트가 원했던 것은 영원한 생명이 아니라 오히려 진짜 인간의 운명인 죽음이었다. 문득 <블레이드 러너>의 로이, 형사 데커드를 살려주고 비를 맞으며 운명을 다하는 그가 떠오른다.

주인공 역시 스스로에 대해 회의하고 괴로워한다. 알은 엄마를 살려내기 위해 자신의 몸을 잃었고 속이 빈 철갑옷에 영혼이 정착되어 있는 상태다. 알은 자신은 정말 자신일까, 아니면 단지 형의 기억을 철갑옷에 씌워놓은 것에 불과한 것은 아닌가 고민한다. 자신이 정말 존재했던 것일까 아니면 다만 기억이 각인된 허상인 것은 아닌가... 무시무시한 철갑옷에서 나오는 어린 아이의 목소리가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지만 나중에는 아주 익숙해져버렸다.

애니 1화부터 연금술을 이용한 사기꾼이 등장하는데 그는 죽은 사람을 살려낼 수 있다고 하며 사람들을 현혹한다. 하지만 이미 인체연성에 실패한 경험이 있는 에드가 보기에 그는 사기꾼이었다. 이걸 보면서 아직 제대로 개발되지도 않은 생명공학기술을 이용해 휠체어를 타고다니는 사람들을 일으켜세우겠다고 사기를 친 아무개가 떠올랐다.

마지막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이 애니의 키워드라고까지 할 수 있는 '등가교환의 법칙'이다. 마지막에 에드와 알은 이 법칙이 항상 성립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누구나 노력한만큼 대가를 얻는다면 세상은 지금보다는 훨씬 좋아져야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다른 등가교환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게 되는데 질량보존만으로는 망가진 기계를 원래대로 돌려놓을 수 없다는 것이다. 거기에는 또다른 에너지가 필요하며 이 에너지는 연성진 반대편(?) 또는 '문 너머'로부터 뽑아와야 한다는 사실이다. 정리하면, 질량보존 법칙과 에너지보존 법칙이 성립하며 동시에 세상은 불완전하다. 마지막의 불완전성은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겠지만 굳이 물리법칙에 끼워보자면 엔트로피 법칙이나 복잡계 이론 정도에 해당하지 않을까 한다.

결국 에드는 동생을 살리기 위해 호문쿨루스들과 싸우다 거의 죽는데 알이 형을 살려내고 형은 다시 동생을 살려낸다. 그렇다고 에드가 완전히 사라져버린 것은 아니고 '문 건너편'으로 가버린다. 에드는 다시 동생을 만나기 위해 이번에는 연금술이 아닌 기계기술을 이용하고자 한다. 에드가 과학기술을 그만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종목이 바뀌었을 뿐이다. 그런데 애니의 내용으로 보자면 실효성은 별로 없을 것 같은 기계기술이다. 어짜피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동생을 만나겠다는 에드의 마음가짐이 중요한 것이다.

* 참고: http://en.wikipedia.org/wiki/Homuncul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