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네이버 블로그에 올렸던 글들 중 다시 볼만한 것들을 종종 옮겨올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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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05/22

지난 금요일 복잡계 연구회에서는 니클라스 루만 전문가로부터 루만에 대한 얘기를 아주 흥미롭게 들었다. 특히 루만이 말하는 '복잡성'은 다음과 같다:

We will call an interconnected collection of elements "complex" when, because of immanent constraints in the elements' connective capacity, it is no longer possible at any moment to connect every element with every other element.
원소들의 연결 용량의 내재적 한계로 인해 모든 원소를 다른 모든 원소와 연결시키는 것이 어느 순간 더 이상 불가능해질 때 그 원소들의 상호연결된 집합을 '복잡하다'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정의된 복잡성에 대해 많은 질문과 토론이 이어졌고, 나는 나름대로 정리를 했다. 환원주의 방법론은 전체의 일부(또는 원소)를 전체로부터 떼어내어 파악하는 것에서 출발하며, 이 원소들의 상호작용을 고려하기 시작하면서 복잡성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렇다보니 상호작용은 곧 복잡성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연결망 관점으로 보자면, 노드(node) 각각은 복잡하지 않지만 이들이 연결된(link) 덩어리는 복잡하다.

하지만 루만은 전일주의 방법론에서 시작하는 것으로 보인다. 모든 원소가 다른 모든 원소와 직접 연결되어 있는 경우에는 모든 것이 확실하므로 복잡하지 않다. 하지만 원소의 연결 용량의 한계로 인해 원소의 개수가 늘어남에 따라 연결은 그에 미치지 못하므로 복잡성이 나타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즉 모든 노드가 서로 연결된(all-to-all coupling) 경우는 복잡하지 않으며 상호작용(link)이 끊어지면서 복잡성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렇게 시작하는 지점이 다르다보니 복잡성의 정의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연결망 관점으로 보면 대충 정리가 된다. 환원주의에서 출발한 복잡성은 상호작용의 '생성'에 의한 것이지만 전일주의에서 출발한 복잡성은 상호작용의 '소멸'에 의한 것이다. N개의 노드가 있을 때 링크의 개수가 0에서 시작하는 것이 환원주의 방법론이라면 N(N-1)/2개의 링크에서 시작하는 것은 전일주의 방법론이다. 어디서 시작했건 0과 N(N-1)/2 사이 어디쯤은 복잡해보이기 마련이다. 

그런데 노드가 주어져 있을 때 이로부터 가능한 모든 링크의 집합을 A라고 하자. 실제로 어떤 연결망의 링크의 집합이 X라고 하면 X의 여집합(즉 A-X)으로 정의되는 다른 연결망을 떠올릴 수 있다. 이 얘기를 하는 것은 환원주의 방법론과 전일주의 방법론은 서로 여집합 관계에 있다는 얘기를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더 구체적으로 여집합 관계에 있다는 것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는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다시 복잡성으로 돌아가서, 복잡성은 완전한 질서도 완전한 무질서도 아니며 그 사이 어딘가에 있다고 하자. 링크가 하나도 없이 노드들만 있는 경우는 노드 사이의 상호작용이 없으므로 전체적으로 매우 무작위한 패턴이 나타날 것이며 반대로 모든 노드가 완전히 연결된 경우에는 상호작용이 매우 강하여 매우 질서있는 패턴이 나타날 것이다. 반대로 노드의 입장에서 보면 연결이 없는 경우에는 다른 노드와의 상호작용을 고려할 필요가 없으므로 노드 각각의 행동은 쉽게 예측될 수 있지만, 모든 노드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면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아지므로 노드만의 성질로부터 예측될 수 없는 불확실성이 나타난다. 즉 환원주의 관점에서 원소=질서, 전체=무질서이며 전일주의 관점에서 원소=무질서, 전체=질서라는 도식을 그려볼 수 있다. 결국 여기서도 환원주의/전일주의가 각각 원소/전체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배고프다. 밥 먹고 더 생각해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