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문고

원래 그냥 끄적거리고 말 생각이었는데, 그림까지 같다붙여버렸네요;;; 꽤 오래전에 읽어보기는 했는데 줄거리도 잘 기억나지 않았어요. 게다가 지금만큼 몰입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한 채로 글자만 읽고 말았나 봅니다. 어떤 계기로 최근에 다시 읽기 시작했는데 아직 본문 12장 중 10장 '준비'를 읽는 중입니다.

헤세의 소설을 많이 본 건 아니지만 이 책 외에는 <지와 사랑>이 기억에 남고, 물론 <데미안>도 그렇고요. 그 작품들에서도 그렇고 <유리알 유희>에도 나오는 구도는 '두 세계'입니다. 음과 양, 성과 속. 서로 다른, 도저히 공존할 것 같지 않은 두 세계를 어떻게 화해시킬 것인가... 아니 꼭 화해를 시켜야겠다는 건 아닌 것 같기도 한데, 여튼 이 두 세계 사이의 대립, 소통, 갈등, 조화...에 대해 끊임 없이 고민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이번에 <유리알 유희>를 읽으면서는 그보다도 이상적인 학문 공동체인 '카스탈리엔'의 정신과 그 안의 학자들, 유희자들 그리고 주인공 요제프 크네히트의 성장과정과 삶, 고뇌, 그리고 그가 외부의 비판에 대해 카스탈리엔 정신을 옹호하면서도 그것의 한계를 성찰하는 모습 등을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카스탈리엔의 구성원들은 검소하고 금욕적인 성직자의 생활을 하지만 학문과 연구 활동에서는 거의 무제한의 자유를 누립니다. 이들 중 최고의 지성은, 음악, 언어, 수학 등 각 분야의 명인들을 포함하여 여러 학문과 예술을 종합하고 이를 고도의 지적인 유희로 표현하는 유리알 유희자들입니다.

정말 그런 곳이 있다면, 그리고 내가 그 구성원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상상을 하게 됩니다. 검소하게 살 자신도 있고 하고 싶은 공부를 마음껏 할 자신도 있지만 인터넷과 술이 없으면 좀 그렇군요;;; 경쟁률은 높을까요?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닐텐데 말이죠;;; 힐베르트 전기에서 어렴풋이 보았던 20세기 초반 괴팅겐의 학풍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학문에 대한 자유뿐만 아니라 또 인상 깊었던 건 '여러 학문과 예술의 종합'과 인간의 정신세계의 보편성에 대한 믿음이었습니다. 그래서 구성원들은 각자의 분야에 대해 정진할 뿐만 아니라 거기에 안주하지 않고 늘 다른 분야와 교류하고 자극을 받아야 한다고 유희 명인이 된 주인공은 강조합니다. 그러한 종합의 최고의 표현 형태가 유리알 유희인 것입니다.

우리의 현실에 비추어 다시 말하자면, 일종의 학술제 + 예술제인데 각 분과가 따로 노는 게 아니라 걍 다 한 자리에 모이되 기계적으로만 모여 있는 게 아니라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모습이라 할 수 있겠네요. 잠깐만 상상해봐도 이거 보통 큰 일이 아니지만 정말 뭔가 그런 게 벌어진다면 "지상 최대의 쇼"가 될 기세가 느껴집니다.

하지만 이러한 카스탈리엔에 대해 외부자들의 비판도 만만치 않습니다. 유희만을 위한 유희라든지, 쓸데가 없다든지, 거세된 존재들이라든지, 상아탑에 갇혀 있다든지, 자신이 먹을 것을 스스로 생산하지 않는다든지, 더 큰 전체 세계로부터 고립되어 현실로부터 도피하는 것에 불과하다든지하는 비판 말입니다. 변하지 않을 진리만을 추구하다보니 카스탈리엔의 구성원들에게 역사라든지 물질을 두고 벌이는 투쟁 등은 불필요하고 무시해야할 일입니다.

그래서 심지어 카스탈리엔조차 역사적 산물이며 언젠가는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 구성원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당연히 이에 대한 진지한 고민도 부족합니다. 주인공 요제프는 카스탈리엔 최고의 유희자이자 정점에 선 인물임에도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진 거의 유일한 존재로서 어떤 행동을 하기에 이릅니다. 그게 뭔지는 제가 다 읽지 못해서;;; 다 읽고 또 생각을 정리해보겠습니다.

말이 길어졌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