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멍합니다. 논문을 봐도 내용이 눈에 싹 들어오지 않고 주파수 걸러내듯 뭔가 필터가 눈에 씌인 모양입니다. 앞 글에서 말한 논문 중 몇 가지 정리할 게 있어서 대충 쓰려고 합니다. 이 주제에 대해 지금까지 그랬듯 아벨 대칭이 있고 결정론적인 모래더미만 생각합니다.

원래 모래더미 모형, 즉 열린 시스템인 몰리고 흩어지는 모래더미 모형(DS)과 모래알 개수 자체가 조절변수인 닫힌 시스템인 고정에너지 모래더미 모형(FES)을 연관지으려는 연구가 1998년부터 있었다고 했죠. 평형통계에 빗대어 말하자면 DS는 정준(canonical) 앙상블, FES는 작은 정준(microcanonical) 앙상블에 해당합니다.

DS에서는 안정한 배열에 더해진 모래알 하나에 의한 요동이 가라앉으면 또다른 안정한 배열이 됩니다. 안정한 배열은 지나가는 것(transient)과 되돌아오는 것(recurrent)으로 나뉩니다. 후자를 되돌이 배열이라 하고요, 시간이 충분히 지나면 정의에 의해 모래더미는 되돌이 배열에만 있습니다. 다(Dhar)가 되돌이 배열은 모두 같은 확률로 나타난다는 걸 밝혀냈습니다(?). 즉 DS의 정상상태는 되돌이 배열만으로 정의되며, 이 되돌이 배열의 모래알의 밀도의 평균이 정상밀도(stationary density)입니다.

그런데 결정론적인 FES(DFES)에서는 에르고딕 성질이 깨집니다. 즉 배열공간을 모두 골고루 잘 다니지 못하고 시작한 위치(배열)에 의존하여 제한된 배열공간 안에서만 돌아다니게 됩니다. 이걸 이미 1990년에 그라스베르거와 만나가 주장했습니다. 어찌보면 뻔한(trivial) 얘기입니다. DS에서는 에르고딕한 이유는 각 자리가 모래알을 받을 확률이 모두 똑같기 때문입니다. DS에서도 특정 자리에만 모래알을 더해준다면 에르고딕하지 않겠죠.

덧붙여, DFES의 상전이를 논의하기 위해서는 안정한 배열뿐 아니라 불안정한 배열까지 고려해야 합니다. 이 불안정한 배열들이 DFES의 활동상태를 뜻하니까요. 불안정한 배열 중에서도 지나가는 배열과 되돌이 배열이 있을 수 있는데 그거랑 별개로 역시 에르고딕 성질은 깨져 있으므로 결론은 같습니다. 만일 결정론적이지 않아서 에르고딕 성질이 적용된다면, 일반적으로 FES의 임계점은 DS의 안정한 되돌이 배열에 대응한다는 논의는 생각해볼만 합니다. 이에 대해 앞 글에 소개한 논문들에서도 뭔가 연결되는 것 같은데 확실하지 않고 앞으로 해볼 문제라고 말합니다.

FES가 갖고 있는 또다른 특성은 무수히 많은 흡수상태(즉 안정한 배열).입니다. 이 성질도 뻔하지 않은 결과를 줄 것 같은데 잘 모르겠네요. 그리고 FES가 접촉 과정(CP)과 다른 점도 중요합니다. CP에서 시스템 크기가 유한하면 시간이 충분히 지나면 언젠가는 흡수상태에 빠지므로 뻔해집니다. 하지만 FES에서는 시스템 크기가 유한해도 흡수상태에 빠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CP에서는 무한시간 극한(infinite time limit)보다 무한크기 극한(=열역학적 극한, thermodynamic limit)을 먼저 해줍니다. 그래야 뻔하지 않은 결과가 나옵니다. 반면 FES에서는 어떤 극한을 먼저 하든 중요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제가 소개한 페이(Fey) 등의 논문에서는 무한시간 극한을 먼저 하고나서 열역학적 극한을 합니다.

마지막으로 페이 등의 논문에서 팔찌 위 모래더미 모형에 관해 얻은 결과 중 초기밀도의 함수로 얻어진 최종밀도, 즉 ρ(λ)가 무슨 의미인지 생각해봅니다. 사실 좀 이상한데, 정상밀도는 DS에서 정의되고 임계밀도는 FES에서 정의됩니다. 그런데 앞 글에서도 말했듯이, ρ(λ)라는 건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습니다. DS라면 초기밀도와 상관없은 정상밀도가 나올테고, FES라면 초기밀도와 최종밀도는 똑같아야 합니다. 사실 앞 글에서도 말했듯 ρ(λ)는 FES에 수채 자리(sink site)를 정해주고 그걸 제외한 나머지 자리에 대해서만 밀도를 구한 겁니다. 이걸 간단히 FES + sink 모형이라 불러보죠.

그런데 FES + sink는 왜 하는 걸까요? 이것의 물리적 의미/동기는? FES + sink로부터 연속상전이가 나타난다든지 하는 얘기가 DS와 FES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걸까요?라는 질문을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주절주절 쓰고 나니 한결 기분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