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오전만 일정이 있고 모두 플레너리 세션이었습니다. 실험하시는 분들이 첫 두 강연을 해주셨는데, 피곤해서 졸다보니 두 강연 모두 제대로 듣지 못했습니다;;; 여튼 케텔(W. Ketterle)은 초저온 원자를 이용한 양자자기화에 관한 실험연구를 발표했는데, 무려 50pK(p는 pico를 줄인 건데 10^(-12)을 뜻하며, K는 절대온도 '켈빈'입니다)까지 낮은 온도를 구현한 모양입니다. 그것 말고 기억나는 게 없습니다. 왕(M. Wang)은 생물물리 실험에 관한 발표를 했습니다.

차 마시는 휴식시간에 커피를 한잔 마시고 정신을 차린 후에 다음 세션을 들었습니다. 3년마다 열리는 이 국제통계물리학회에서 두명씩 볼츠만 메달을 수여하는데, 이번 주인공은 존 카디(John Cardy)와 베나르 데리다(Bernard Derrida)입니다. 각 수상자가 50분씩 수상기념강연을 했습니다.

카디는 "편재하는 'c': 스테판-볼츠만 법칙에서 양자정보이론까지"라는 제목으로 발표했습니다. 흑체복사에 관한 스테판 법칙은 1879년에 나왔는데, 에너지 밀도(u)는 온도(T)의 4제곱에 비례한다는 것입니다. 이후에 스테판의 제자인 볼츠만이 압력을 P=u/3로 쓰고나서 두어줄만에 같은 결과를 유도해냅니다. P=u/3는 에너지-모멘텀 텐서의 대각합이 0이라는 사실로부터 나오기도 합니다. 1차원에서 u는 T의 제곱에 비례하는데 그 비례상수 중 c가 들어갑니다. 보존 1개면 c는 1이고 스핀없는 페르미온이면 1/2입니다.

1차원 양자임계성은 2차원 고전임계성과 같습니다. 장(field)의 범함수로 주어지는 작용(S)을 복소수(z) 공간 위에서 표현하고, 0이 아닌 스트레스 텐서의 성분 T(z)를 찾습니다. 그리고 z를 등각변환(conformal transformation)하는데 이걸 f(z)로 씁니다. 이 변환에 의해 작용은 그대로이며 T(z)는 f를 이용해 표현됩니다. 그런데 요동까지 고려하면 이 성분이 발산해버린다네요. 그래서 T(z)를 조금 다르게 정의하는데, 이때 매우 작은 δ를 도입하며, 이로 인해 T(z)의 결과가 바뀝니다.

T(z)=f'(z)^2 T(f(z)) - c/12 {f,z}

여기서 c는 1이 나오는데, 등각변환하는 과정에서 생긴 비정상적인 양이어서 등각변칙(conformal anomaly)로 부릅니다. 다시 2차원 스테판-볼츠만 법칙으로 돌아가서 평면에서 원통으로 등각본뜨기를 하는데요, f(z) = β/2π log z로 씁니다. 평면에서 T(z)가 0이라는 조건과 위 변환식을 이용하면 스테판-볼츠만 법칙이 유도됩니다. 위 텐서에 관한 더 일반적인 연산자를 정의하는데 이 연산자들은 비라조로 대수(Virasoro algebra)를 따른다고 합니다. 이로부터 1보다 작은 c는 일정한 패턴을 갖는 유리수로 표현되는데, 이 값들로 만들어지는 표가 2차원 임계현상의 보편성 분류를 모두(?) 포괄하고 있으며 임계지수들도 이 표로부터 얻어진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양자얽힘에 관한 논의에도 이 c가 등장합니다. 2차원 양자상전이 근처에서 바닥상태에 관한 정보를 c가 정량화해준다고 합니다. 그리고 논의는 1차원에 대해서 하는데, 무한히 큰 1차원을 한 점을 기준으로 두 부분으로 나누는데 각각 A,B라 부르고, 바닥상태를 B에 대해 대각합을 구하면 A의 밀도(ρ)가 됩니다. ρ를 이용한 레니 엔트로피를 구하기 위해 ρ의 n제곱의 대각합을 구해야 하는데, 이때에는 f(z)=z^(1/n)이라는 등각변환을 이용한다고 합니다. 여튼 이로부터도 c가 레니 엔트로피에 나타납니다.

다음으로 데리다의 발표제목은 "비평형 시스템에서 거시적 접근 대 미시적 접근"입니다. 좌장이 데리다가 연구한 분야를 나열하는데 안한 게 뭐냐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얇은 관으로 이어진 두 상자 a,b가 있다고 합시다. a의 입자 밀도와 b의 밀도가 같으면 충분히 시간이 지나면 관 속의 입자 밀도는 모두 같겠죠. 하지만 a의 밀도가 b의 밀도보다 크다면 관 속의 밀도도 상자 a로부터의 거리에 따라 일정하게 줄어들 겁니다. 전자의 경우 어떤 상태일 확률은 볼츠만 요소로 주어지고, 상관길이가 짧고 자유에너지는 국소적이고 시간대칭이 있고 1차원에서 상전이가 없습니다. 후자의 경우는 비평형상태로서 어떤 상태일 확률에 대한 일반적인 해가 존재하지 않고, 먼거리 상관, 비국소적인 자유에너지, 시간대칭깨짐, 1차원에서 상전이가 존재하는 성격을 갖습니다.

이런 비평형문제를 어떻게 풀거냐.에 관해 데리다가 많은 일을 했습니다. 그중에서도 SSEP에 관한 연구를 소개하는데요, 1차원 격자의 양끝에서 입자를 시스템에 넣는 비율과 입자를 꺼내는 비율을 각각 다르게 주면 앞서 말한 '양쪽 상자의 밀도를 다르게 하는 비평형 시스템'에 해당합니다. 어제 다른 발표에서 들었던 온사거-마클룹 방법을 이용하여 이 문제에 접근합니다. 그런 흐름에서 SSEP의 비평형정상상태(NESS)를 구하는데, 어떤 자리가 비어있으면 E라는 행렬을, 입자가 놓여 있으면 D라는 행렬을 대응시켜서 이 행렬들의 곱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 NESS는 '더하기' 성질을 갖습니다. 시스템을 두 부분으로 나누면 각 부분의 NESS를 이용해 전체 시스템의 NESS를 구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런 문제에서도 요동이론을 적용할 수 있습니다. 또한 ρ(x)가 고정되지 않고 시간에 따라 변하는 경우도 고려할 수 있다고 합니다.

다음으로 원주 위의 SSEP를 고려합니다. 즉 주기적 경계조건을 이용합니다. 이때 시스템 전체 입자의 밀도는 고정되며, 입자의 흐름에 관한 생성함수를 구할 수 있고 이중 어떤 값들은 보편적이라고 합니다. 이 경우는 거시적 요동이론(MFT)과 베테 추측(Bethe ansatz)의 결과가 같다네요. 사실 원주 위의 SSEP면 그냥 평형이므로 뭘로 풀어도 같게 나올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양 끝에서 입자가 들락날락하는 시스템에 계단 모양의 초기조건을 주고 문제를 풀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

1시가 넘게 학회장에서 나와서 케밥으로 점심을 먹은 후에 숙소에 돌아와서 인터넷을 즐기며 놀며 쉬며 하다가 4시 넘어서 시내구경을 갔습니다. 사실 학회장과 그 주변은 완전히 휴양지인데다가 동양인이 많아서 그런지 음식점도 중국/일본/한국/타이/말레이시아/인도 음식점이 대부분이고 일하는 사람들도 동양인이 많고, 한국인도 많아서 식당에서 "저기요~"라고 부르면서도 어색하지 않은 분위기입니다. 그래서 해변보다 더 안쪽 동네를 잠시 다녀왔습니다. 사실 두 블럭만 더 안쪽으로 가면 더이상 가게에 일본어나 한글이 없는 '진짜' 호주 느낌이 납니다. 좀더 안쪽으로 가니 놀이공원도 있고 휴양지가 아닌 사람 사는 동네도 살짝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케언즈 기차역에 붙은 백화점 같은 프라자 카페에서 처음으로 long black을 시켜서 마시면서 같이간 학생과 수다를 떨다가 다시 일본 라면으로 저녁식사를 하고 들어왔습니다.

다시 학회 얘기를 하면, 통계물리는 아무래도 실험보다는 이론이 주류(?)인데요, 볼츠만을 생각해봐도 자연스럽죠. 열역학 실험결과를 거시적으로 이해하려던 당시 물리학자들과 다르게 '원자 가설'에서 시작한 이론을 제시했으니까요. 볼츠만 메달을 받은 사람들도 아마 거의 대부분 통계물리 이론을 발전시킨 사람들이고요. 3년전에 볼츠만 메달을 받은 빈더는 전산물리로 알려진 사람인데 볼츠만 메달을 받음으로써 비로소 컴퓨터 시늉내기가 인정된다고 봐야겠죠. 3년 전에 빈더가 수상기념으로 발표하면서도 자기가 컴퓨터로 계산하니까 학계에서 인정받지 못했다고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앞으로도 전산물리나 실험으로는 볼츠만 메달을 받기 힘들 것 같고, 그보다는 생물물리나 다른 분야에서 이론적 업적을 쌓은 사람들이 받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치면 사회물리/경제물리는?이라는 생각도 들기는 하는데, 매우 오랜 시간이 지나야, 또는 불가능한 일일 수도 있겠네요.

볼츠만 메달이 중요하다기보다는 학계의 주류(?)의 마인드에 대한 힌트를 얻는 정도입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럼에도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연구가 인정받아야 힘이 생기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 '인정'의 최고 수준은 통계물리 분야에서는 볼츠만 메달이고요. 내가 갈 길이 외롭다는 느낌, 수학적 이론으로 중요한 문제를 푸는 주류에 대한 동경, 그만큼 열심히 하지 못한 나의 게으름에 대한 후회... 여러 감정이 듭니다. 내일부터 다시 빡센 학회가 시작됩니다. 그렇게 이틀만 지나면 슬슬 한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해야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