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국제통계물리학회 마지막날 일정에 대해 정리합니다. (생각보다 성원을 많이 해주시네요.) 아침 9시 플레너리 세션을 들으러가니 다음, 즉 제25회 국제통계물리학회가 2013년 7월 서울에서 열린다는 공지가 뜨더군요. 박수 한 번 치고, 플레너리 세션이 시작되었는데, 니시모리(H. Nishimori)의 양자 담금질(quantum annealing; QA)에 관한 강연이었습니다. 여행하는 판매원 문제(TSP)의 최적화나 스핀 유리에서 바닥상태를 찾는 문제는 복잡한 에너지(또는 비용) 풍경에서 온곳 최저점을 찾는 문제로 이해할 수도 있는데요, 이런 문제를 '고전적'으로 해결했던 기술로 시늉낸 담금질(simulated annealing; SA)이 있습니다. 온도를 점점 낮추면서 한곳 최저점에 갇히지 않도록 하는 방법인데요, 어떤 온도(T)까지 얼마나 오래(t) SA를 해야 믿을만한 결과가 나올까하는 '수렴 조건'이 T(t) ~ N/ln t 로 주어진다고 합니다. 즉 오래할수록 더 낮은 온도에 접근할 수 있고, 또는 낮은 온도에 접근하려면 그만큼 오랫동안 담금질해야 한다는 말이죠. QA의 경우 T=0으로 하되, 양자스핀에 대한 가로장(transverse field)을 걸어주는데 이 장의 세기(Γ)를 0이 아닌 값에서 시작하여 0으로 보내면서 바닥상태를 찾습니다. 수렴 조건은 Γ(t) ~ t^(-c/N)이라고 하네요. SA에 비해 훨씬 빠르게 수렴한다는 말입니다. SA가 에너지 풍경의 언덕들을 열적 요동으로 뛰어넘게 했다면, QA는 언덕들을 뚫고(tunneling) 지나가게 했기 때문입니다.

동시세션은 주제11(학제간 주제)을 택했는데, 헤르만(H. Herrmann)의 발표로 시작되었습니다. 제목은 "연결망의 견고함"인데요, 노드가 많은 허브가 공격받을 때, 적절히 링크를 다시 (랜덤하게?) 이어주면 연결망이 좀더 견고해진다는 결과를 소개했습니다. 양파구조(onion structure)라고 불렀던 것 같네요. 문제는 그러다보면 애초에 척도 없는 연결망이더라도 나중에는 랜덤 연결망이 될 것 같은데, 누군가 이 질문을 했고 이웃수 분포가 그대로 되도록 이어주기를 한다고 대답한 것 같습니다. 베르겐(G. Wergen)은 기후의 신기록 자료들로부터 기후온난화를 볼 수 있다는 내용을 발표했고, 왕(B.-H. Wang)은 인플루엔자 A의 확산패턴과 조절에 관한 실증연구와 모형연구를 발표했습니다.

다음 동시세션은 주제7(비평형 현상)을 택했습니다. 소책자에 나온 초대발표자(invited speaker)는 자페리(S. Zapperi)인데 학회에 참석하지 못해서 자페리의 공동연구자이자 이 세션의 기여발표자(contributed talk/speaker?)였던 로슨(L. Laurson)이 초대발표를 했습니다. 이를테면 나무통의 갈라진 틈을 천천히 벌리면 그 틈이 더 깊어지는데 그 깊어지는 모양을 2차원 평면 위에서 굳은 결점(quenched defect)이 있을 때의 표면성장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틈을 조금 벌릴 때 얼마나 깊어졌는지가 하나의 사태로 정의되는데 이 사태의 분포가 거듭제곱 꼴이며 그 지수는 평균장 값이 나오는데, 부분 사이의 상호작용이 먼거리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왜 그런지 질문했더니 수식만 보여주고 말던데, 2차원 XY 모형에서 소용돌이 사이의 상호작용과 비슷한 성질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플라이너(H. Pleiner)의 발표는 거의 기억이 안나네요;;; 그리고 소책자에는 없던 프레데릭슨(Frederiksen)은 엔스트로피(enstropy)라는 양을 도입(?)하여 어떤 시스템의 비선형 안정성 조건은 평형상태가 존재할 조건과 같다는 얘기를 했는데, 역시 무슨 소린지;;; 소책자에는 이 세션에 발표자가 하나 더 있는데, 했던가 안했던가...

점심 먹고 포스터 발표를 했습니다. 사실 잘 팔리는 주제가 아니라 장사가 잘 안되었는데, 한 40분 동안 멍하니 서 있으니 낯이 익은 일본의 T군이 와서 설명을 해줬습니다. 나름 이것저것 물어보고 제가 대답하고 설명하고 하느라 힘이 들더군요. 포스터세션이 끝나기 한 15분쯤 전에 또다른 일본인이 왔는데 지쳐서 설명을 해야 하나...라고 잠시 생각하다가 힘을 내어 설명해줬습니다.

지친 상태로 피셔(D. Fisher)의 플레너리 세션 발표 "진화는 정량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가?"를 조금 늦게 들으러 갔습니다. 말을 너무 빨리 하고 잘 알아듣지도 못하고, 뭔가 진화에 관한 통계물리 모형에 대한 소개부터 흐름을 설명해주는 것 같은데 딴짓 하면서 패쓰~ 다른 분들이 "발표자가 성의가 없다"고 하시는 얘기를 들으며 공감했습니다;;;

다음 동시세션은 주제3(비평형 과정)을 선택. 토야베(S. Toyabe)는 두 개의 조화진동 포텐셜 안에 있는 작은 입자의 운동에 관한 실험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입자의 위치로부터 정보를 얻어서 그에 따라 한 포텐셜을 끄고 다른 포텐셜을 켬으로써 입자에 영향을 줍니다. 이러한 되먹임을 정보-에너지 변환으로 부르는데 이를 통해 자진스키 등식을 조금 다른 식으로 쓸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다음은 KIAS의 박형규 교수님이 각 떨개의 고유주파수가 랜덤하게 주어지는 구라모토 모형에 두 우물 포텐셜을 가해주고 여기서 어떻게 자발적 전류가 발생하는지를 발표하셨습니다. 국내에서도 관련 발표를 들은 적이 있어서 복습하는 마음으로 들었습니다. 로버츠(A. Roberts)는 쪽거리 그래프/연결망에서 정의되는 쪽거리 차원과 마구걷개 차원과 스펙트럼 차원 사이의 관계식(알렉산더-오르바흐 법칙)과 거리에 따른 저항의 눈금잡기 지수에 관한 관계식(쪽거리-아인슈타인 법칙)에 대한 연구를 발표했습니다. 비등방성이 있는 그래프였나 마구걷개였나 여튼 그런 상황에서도 위 관계식들이 잘 성립함을 보인 것으로 기억합니다. 풀리시(A. Puglisi)는 마코프 과정에 관한 상태공간에서 '빠른 상태'(즉 그 상태에 머무는 시간이 짧은 것)를 제거하는 '거칠게 보기'를 적용하면 그 위에서 정의되는 상태경로들에 어떤 변화가 나타날 것인지에 대해 발표했습니다.

잠시 쉬고, 드디어 마지막 동시세션! 주제3(비평형 과정)의 초청발표자 반덴브록(C. Van den Broeck)의 발표를 들었습니다. 제목은 "(열역학) 제2법칙의 여러 얼굴들"인데요, 열역학의 시초에서 시작하여 제2법칙이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 그리고 그게 최근 활발히 연구되는 자진스키 등식, 요동정리로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보여줬습니다만 역시 다 알아듣지는 못했습니다. 여튼 그런 흐름을 살짝이라도 엿보고 나니, 이 주제가 중요하기는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꼈습니다. 다음으로 해리스(R. Harris)는 '먼거리 기억'이 있는 확률과정에 대한 연구를 발표했는데 점점 피곤해져서 패쓰.

다음으로 잠깐 다른 세션인 주제8(무질서/유리시스템)의 오타(H. Ohta)의 발표를 듣고 왔습니다. 제목이 섹시하게 "사태 현상의 동역학적 성질의 정확한 분석"이어서 사태분포의 거듭제곱 지수를 정확히 구하는 문제를 풀었다는 줄 알고 갔는데, 사태분포는 안풀고 관련된 다른 임계지수만 정확히 구했다더군요. 뭐 제목을 다시 보면 틀린 말은 아니지만 웬지 속은 느낌이 좀... 약간 허한 마음으로 다시 원래 듣던 세션으로 와서 가톨릭대학의 박수찬 교수님 발표를 들었습니다. 제 블로그에도 소개한 적이 있는 자기조직화 임계성과 고정에너지 모래더미 모형 사이의 관계에 대한 연구를 발표하셨습니다.

이것으로 모든 일정이 끝났습니다. 그날 저녁은 케언즈의 한국식당에서 근 일주일만에 한국음식을 먹었는데, 외국으로 느껴지지 않을만큼 김치전골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케언즈 공항에 가서 브리즈번에 도착하고, 브리즈번 공항에서 새우잠 자고 다음날 아침 비행기를 타고 나리타에 갔다가 다시 인천으로, 다시 서울로... 지금까지 웬만해서 비행기 타면서 지치기는 해도 힘들 정도는 아니었는데, 새우잠의 영향으로 나리타-인천 비행기에서는 멀미가 날뻔 했습니다. 그걸 제외하고는 무사히 도착하여 이번주 KIAS 학회도 놀멘놀멘 듣고 다 끝났네요. 사진과 다른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시간날 때 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