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시리 제목이 길어졌는데 별 거 없습니다. 날이 갈수록 사진을 찍고 돌아다니는 게 귀찮아져서 말이죠. 남들 다 다녀왔다는 멋진 바다속 산호 구경, 스노클링 등을 전혀 즐기지 않았습니다.


저는 인천-나리타-브리즈번-케언즈 경로로 움직였습니다. 위 사진은 케언즈 공항에서 10달러 내고 탄 셔틀 맨 앞 자리에 앉아 찍었습니다. 공사중이라 좀 어수선하지만 그래도 한산하네요.


위 사진은 몇 달 전에 인터넷으로 예약하여 첫 이틀밤을 보낸 길리건스(Gilligan's) 백패커스 호텔의 디럭스 4인실입니다. 여긴 완전히 놀자판 숙소라 새벽 1-2시까지 디스코 음악과 사람들이 지르는 소리로 잠을 자기 힘든 곳입니다. 제가 묵은 방이 시끄러운 쪽이고 반대편은 비교적 조용했다고 합니다. 여튼 놀러간 거면 즐기다 오겠지만 매일 빡센 학회 일정을 소화하고나서 밤에 시끄러워 못자면 안되므로 다른 숙소로 옮겼습니다. 그런데 인터넷 예약은 25% 위약금을 내야 한다는 규정이 있어서 57달러를 떼였습니다. 자정이 넘어서까지 시끄러운 건 호텔 측 책임이라고 열받아서 소리치며 따졌는데도 돈을 돌려받지는 못했습니다.


제24회 국제통계물리학회가 열린 케언즈 컨벤션센터 사진입니다. 이때만해도 낮기온이 25도를 넘겨서 더웠습니다.


케언즈 시내지도를 보다보니 '마누라(Manoora)'라는 지명이 보여서 찍었습니다;;; Mooroobool(무루불)이라든지 Manunda(마눈다)라든지 어감이 재미있는 동네 이름들이 있던데 무슨 뜻이냐고 현지인에게 물어볼 생각도 못했군요. 사실 현지인을 보기가 힘들었는데, 대부분 관광/여행온 사람들이고 심지어 식당도 온통 일본, 중국, 한국, 타이, 말레이시아, 인도 식당뿐이었습니다. 물론 동양인도 많이 보였고요. 어쩌면 '서양'이라는 '낯익은' 풍경을 기대했던 탓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길리건스에서 싸우고 나와서 좋은 곳을 발견했는데, 바로 위 사진입니다. 노던그린하우스(Northern Greenhouse; NGH)라는 숙소인데, 6인실 하룻밤에 24달러로 길리건스 디럭스 4인실(38달러)보다 싸지만, 시끄럽지도 않고 간단한 아침 식사(시리얼+우유와 식빵+잼)가 제공되고 일요일 오후 5시에는 역시 무료 소시지 바베큐도 주고, 먹을 기회는 없었지만 매일 오전 11시에 팬케이크도 무료로 준다고... 무엇보다 인터넷이 무제한 무료!!!였다는 사실. 길리건스에서는 1달러에 15분이었고 다른 웬만한 숙소도 인터넷 무료인 곳이 별로(? 전혀?) 없었거든요. 학회가 시작되기 전 이곳으로 옮겨서 매우 만족했습니다.

이곳에서 묵으면서 말 한 번 못해본 여행객들도 스쳐지나갔지만, 워킹 홀리데이로 온 한국인도 만나서 얘기도 나눌 수 있었고, 독일, 네덜란드에서 온 장기 여행자들도 만나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길리건스에서도 아일랜드에서 온 여행자들과 얘기 나눴지요.


NGH 벽게시판에 붙어 있던 걸 죽 보다가 눈에 띄는 광고를 만났습니다. 바로 호신술 강좌 광고!!! 사진을 줄여서 희미하지만 브루스 리 이름이 진하게 표시되어 있고, 바로 영춘권에 대한 설명이라는... 영어로는 Wing Chun으로 쓰나봅니다.


케언즈는 바닷가 도시인데 사실 여기 바닷가는 우리나라로 치면 동해보다는 서해에 가까워서 바로 앞에 뻘이 펼쳐져 있습니다. 그래도 물장구치고 놀라고 그 바로 앞에 위와 같은 수영장(lagoon)을 만들어서 얕은 곳부터 깊은 곳까지 사람들이 놀 수 있게 해놓았습니다. 밤에 찍은 거라 사람도 별로 없지만 낮에는 뒹굴뒹굴하기 좋더군요.


어쩌다보니 학회 얘기는 하나도 없고;;; 위 사진은 학회 마지막날 오전 9시에 제25회 국제통계물리학회가 서울에서 열리기로 결정됐다는 공지를 하는 장면입니다. "마지막날 오전"이라 자리가 텅텅 비어있죠... 여튼 박수 한 번 치고 공지 끝.


워낙 2년 전 촛불집회가 기억에 선명한데, 케언즈 거리에 있는 Mad Cow 술집(tavern)을 보고는 웃겨서;;; 찍어왔습니다. 낮이라 그런지 문이 닫혀 있던데, 이름이 좀... 여튼 주 후반에는 날도 흐리고 쌀쌀해져서 긴팔을 입고 다녔습니다. 사실 반팔을 하나만 갖고 가서 입을 옷이 없기도 했지요.


모든 일정을 마치고 다시 케언즈-브리즈번-나리타-인천으로 오는 길. 문제는 브리즈번 공항에서 하룻밤을 자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저녁 8시쯤 브리즈번 공항에 도착하여 다음날 아침 8시에 나리타로 떠나는 비행기를 타야했거든요. 텅 빈 체크인 데스크를 바라보며 찍은 겁니다. 새벽에 배고파 죽을까봐;;; 공항 가게마다 돌아다니며 몇 시에 문닫냐고 물어보고, 결국 자정이 조금 넘은 때에 스콘과 과일을 먹어두었지요.


늘 마지막은 이런 사진으로... 나리타 도착하기 얼마 전에 비행기에서 찍은 구름 사진. 어쩌면 저런 빛과 색과 웅장한 구름과 솜털 같은 구름일까... 브리즈번 공항에서 새우잠을 잤더니 피곤한데도, 케언즈 공항에서 구입한 스도쿠 퍼즐을 열심히 풀며 왔습니다.

인천에 착륙하기 바로 전에 자연다큐를 잠깐 보고 있었는데, 바다에 떠 있던 물범(?)을 커다란 상어가 낚아채며 물 밖으로 뛰어오르면서 물이 사방으로 튀는 장면을 느리게 보여주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아! 다들 저렇게 사는구나. 그런데 스펙터클해서 그런지 진부하지 않고 뭔가 숭고한 느낌이 들어...

2010년 7월 25일 밤 9시 반쯤. 긴 팔을 입어 좀 답답했지만 리무진버스를 타니 다시 시원해졌고, 상어가 물범 낚아채는 장면이 머리 속에 남은 채로 다시 합정을 신촌을 종로를 지나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