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뭐하는 사람인가?"라는 질문을, 하루이틀 해본 것도 아니지만, 새삼스럽게 다시 해봅니다. 밥을 먹기 위해 하는 일 또는 밥먹고 하는 일의 대부분은 공부하고 연구하는 일입니다. 좀 애매하지만 '사회물리학'이라고 부를 수 있는 분야에 있으니 제 자신을 '사회물리학자'라고 불러봅니다.

가장 먼저 나오는 반응은 물리학자가 사회현상을 연구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에 대한 의혹(;;)의 눈초리입니다. 무엇보다 물리학의 대상은 자연현상이라는 거죠. 일리 있는 말입니다. 이 세계를 이루는 근본입자와 근본상호작용에 대한 이해도 완전하지 않은 상황에서 수없이 많은 입자로 이루어진 인간에 대한 이해도 요원한데, 그런 인간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사회과학도 아닌 물리학으로 이해해보겠다는 시도는 터무니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그런 비판(?)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습니다. 일단 근본입자/상호작용에 대한 이해 없이 나머지를 '완전히'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다는데 동의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해하고자 하는 현상과 이해하고자 하는 수준에 따라 어느 정도의 세부사항은 무시될 수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제가 하늘로 던진 공이 포물선 운동을 하는 현상을 '고전적인' 수준에서 이해하려고 할 때 굳이 상대성이론이나 양자역학이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효과가 전혀 없지 않겠지만 0에 매우 가까운 값이겠죠.

그렇다고 고전역학을 물리학이 아니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건 그 나름의 영역에서 여전히 쓸모 있는 지식체계입니다. 여기까지 인정해도 '그 나름의 영역'을 어디까지 확대할 거냐가 다음 문제네요. 생물물리학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줏어들은 걸로 판단해보면 이미 어느 정도 성숙한 분야인 듯 합니다. 통계물리학회에 가도 상당히 많은 비중을 생물물리 연구가 차지하고 있지요. 여기서도 역시 상대성이론이나 양자역학을 심각하게 고려한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세포막 위의 고분자 모터가 빛의 속도에 가깝게 움직인다거나, 절대온도 0도에 가까운 환경에서 살아가는 생명이 존재한다면 마땅히 상대론과 양자역학이 필요하겠지만요.

일반적으로 어떤 현상에는 대개 그 현상이 나타나는 특정한 시공간 규모가 있습니다. 예를 들고 싶지만 대강 머리에 그림은 그려지는데 구체적인 숫자를 몰라서 패쓰;;; 그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그 특정한 규모보다 작거나 큰 다른 규모를 굳이 고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대략 하루가 주기인 어떤 현상에 관심이 있다면 그보다 작은 주기의 효과는 (극단적으로) 평균되어 사라지고, 그보다 긴 주기의 효과는 (극단적으로) 고정된 상수로 간주할 수 있습니다. 즉 특정 주기보다 작거나 큰 주기는 일종의 경계 조건으로 작용할 뿐이라는 겁니다.

괜시리 또 말이 길어졌는데, 간단히 "규모분리 효과"라고 부릅시다. 이 효과가 존재하는 한 각 규모에는 그 규모에 걸맞는 이론과 법칙이 필요하다는 필 앤더슨의 주장에도 힘이 실릴 수 있죠.

생물물리도 있고 더 큰 규모의 생태학에도 물리학의 방법론을 적용하는데('생태물리학'으로 부르기도 하던데 사실 잘 모릅니다;;) 인간 사회를 물리학으로 이해하려는 시도는 어떨까요? 두 가지 측면을 생각해보죠. 하나는 현상/대상의 복잡성이고 다른 하나는 주관/객관 문제. 사실 연구 '대상'의 복잡도로, 일단 단순하게 그 대상을 이루는 입자의 개수를 보자면 조금만 '거시'로 넘어와도 최소 아보가드로 수만큼 '복잡'해집니다. 따라서 미시 현상을 제외하고 다 복잡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제일 중요한 문제는 아마도 인간이 인간 자신을 '객관적으로' 연구할 수 있느냐인데, 이건 사회과학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문제이고 거기서도 문제 없다면 여기서도 문제 없습니다. 그럼 그냥 사회과학이라고 하지 왜 '물리학'이라는 이름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이 생깁니다. 경제학, 사회학 이런데서도 원래 다 실증연구하고 통계 쓰고, 수식 써서 풀고, 모형 만들어서 컴퓨터 돌리고, ABM 돌리고... 못하는 게 없죠.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가져다 쓰면 됩니다.

정리 안됨;;;; 여튼 '계산사회과학자'라고 할까 하다가 '사회과학'이라는 이름을 쓰기에는 좀 멀기도 하고, 아직 '물리학'이라는 이름에 미련;;;도 있고, 그렇다고 '자연현상'을 대상으로 삼지도 않은 상황에서 딱 그 이름에 걸맞게 애매한 '사회물리학'이 제일 나아보였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