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글에서 원래 하려고 했다가 못한 얘기를 풀어보겠습니다. 그전에, '무질서'라는 말에 대해 개념정리를 해보려고 합니다. (웬지 서론이 길어질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통계물리에서 다루는 많은 모형에는 '확률'이라는 게 들어갑니다. 미시적으로는 결정론적인데 거시적으로 보려니 확률 과정으로 기술할 필요가 있을 수도 있고, 미시적으로도 원래 확률을 따르는 과정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든, 우리가 다루는 대상에 '변화'가 생길 때마다, 그게 어떻게 변할지를 동전이든 주사위든 던져서 결정한다는 말입니다. 이것도 일종의 '무질서'라고 할 수 있지만 그보다는 '확률 과정' 같은 표현이 더 일반적으로 쓰입니다.

접촉 과정은 입자가 소멸하거나(A → 0) 복제하거나(A → 2A) 하는 과정을 가리키는데, 소멸할 확률, 복제할 확률만 주어지고 그에 따라 시스템이 변화합니다. 이것도 그냥 확률 과정 중의 하나인거죠. 그런데 '무질서한 접촉 과정(DCP)'라고 할 때 무질서가 뭐냐.하면 입자의 복제율이 위치에 따라 달라진다는 겁니다. DCP의 반대는 '깨끗한 접촉 과정'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이건 복제율이 위치와 상관없이 모두 똑같다고 가정하는 겁니다.

이를테면 전염병이 퍼지는데, 모든 사람이 이웃사람들과 만나는 횟수가 똑같다면 전염병이 확산될 확률은 모든 사람에서 똑같을 겁니다. 하지만 실제로 어떤 사람은 하루에 100명을 만나는데 어떤 사람은 1명만 만난다고 하면, 당연히 전염될 확률은 100배의 차이가 나겠죠. 사람에 따라 병을 옮길 확률이 달라진다는 거죠. 그리고 100명을 만나는 사람은 계속 100명을 만나고, 1명을 만나는 사람은 계속 1명만 만난다면, 전염 확률은 사람마다는 다르지만, 그 사람의 전염 확률은 변하지 않을 겁니다. 이런 걸 '공간적으로 담금질된 무질서(spatially quenched disorder)'라고 부릅니다.

quenched의 반대말은 annealed인데요, 어떤 사람이 하루는 100명을 만나다가도 다음날은 5명을 만날 수도 있고 그 다음날은 10명을 만날 수도 있겠죠. 이런 게 annealed disorder입니다. quenched와 annealed는 무질서가 고정되어 있느냐 아니냐로 달라집니다. 물리용어조정안에는 quenched를 '담금질'이라고 쓰는데 개념의 차이를 드러내는데 적절해 보이지 않네요. 음... 숙제로 남겨놓겠습니다. 여기서는 quenched인 경우만 다룹니다.

역시나 서론이 길어졌군요;;; 그럼 DCP의 동역학적 성질, 즉 시간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보겠습니다. 그전에 원래 CP(즉 무질서하지 않은 '깨끗한' CP)부터 얘기하겠습니다. 아래글의 그림 중 위쪽 그림을 보시면 복제율 λ에 따라 활동성이 없는(inactive), 즉 흡수상태(입자가 모두 사라짐)와 활동상태(입자들이 살아남음)가 나뉩니다.

시각 t에서 입자의 밀도를 ρ(t)라고 합시다. 처음에 모든 자리에 입자가 하나씩 있다고 합시다. 이걸 ρ(0) = 1이라고 쓸 수 있습니다. 접촉 과정이 시작되면 시간에 따른 ρ(t)의 변화를 볼 수 있고, λ가 어떤 임계값보다 작으면, 시간이 흐르면서 ρ는 0에 접근합니다. 이때 지수함수적으로 접근하는데요, ρ(t) = exp(-t) 처럼 쓸 수 있다는 거죠. λ가 어떤 임계값보다 크면, 시간이 흐를수록 ρ(t)는 0보다 큰 어떤 특정한 값 ρ_s에 수렴하는데 역시 지수함수적으로 접근합니다. 이걸 수식으로 쓰면 ρ(t) = ρ_s + exp(-t) 입니다. 두 경우 모두 '지수함수적 감소/수렴'입니다.

그럼 그걸로 끝이냐...가 아니라 λ가 정확히 그 임계값이라면 ρ(t)는 0으로 수렴하기는 하는데 거듭제곱 꼴로 수렴한다는 겁니다. 이제부터 깨끗한 CP에서의 임계값을 λ_c0로 쓰겠습니다. (사실 '0'은 위첨자로 써야하는데 길어져서 그냥;;;)


앞의 '지수함수적 감소/수렴'과는 모양이 다르죠. 다르면 끝.이 아니라 왜 다른지 물어야 합니다. 간단히 말해서 각각의 상태(흡수상태, 활동상태)에서는 입자들이 서로 무관하게 행동하지만, 두 상태가 만나는 점, 즉 상전이가 일어나는 임계점에서는 입자들이 서로 밀접하게 상호작용한다는 말입니다. 통계물리에서도 왜 상전이와 임계현상이 중요하냐 하면, 바로 이 이유, 즉 '밀접한 상호작용' 때문입니다. 비슷한 말이나 연관된 개념들로는 먼거리/긴시간 상호작용, 눈금잡기 불변(scale invariance), 프랙탈, 1/f 노이즈, 자기유사성, 거듭제곱 법칙, 두꺼운 꼬리 따위가 있습니다.

깨끗한 CP에서 입자밀도의 동역학적 특징을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λ < λ_c0 : ρ = 0으로 지수함수적(exponential) 수렴
λ = λ_c0 : ρ = 0으로 거듭제곱(power-law) 수렴
λ > λ_c0 : ρ = ρ_s로 지수함수적 수렴

서론 두번째 부분도 길어졌네요;;; 이제 정말 DCP의 동역학적 특징을 얘기하겠습니다. 앞에 소개한대로 공간적으로 담금질된 무질서.가 있을 때 DCP는 아래글의 그림 중 아래쪽 상그림을 보시면 됩니다. DCP에서 새로 나타난 임계점의 임계값은 λ_c로 쓰겠습니다. 결론만 얘기하면,

λ < λ_c0 : ρ = 0으로 지수함수적 수렴
λ = λ_c0 : ρ = 0으로 펼쳐진 지수함수적(stretched exponential) 수렴
λ_c0 < λ < λ_c : ρ = 0으로 거듭제곱 수렴 [그리피스 상태; GP]
λ = λ_c : ρ = 0으로 거듭제곱 또는 로그함수적(logarithmic) 수렴
λ > λ_c : ρ = ρ_s로 지수함수적 수렴

써놓고 보니 나올만한 함수형태는 다 나온 것 같네요. λ = λ_c에서 거듭제곱일 수도 있고 로그함수일 수도 있는데 이건 아직 논란의 여지가 있고요, 무질서의 정도가 약하면 거듭제곱인데, 무질서의 정도가 강하면 로그함수 형태를 띈다라는 시나리오가 더 많이 지지를 받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정리를 하고나니 뿌듯합니다만, 아직 위의 결과들이 어떻게 나온건지 설명하지 않았으니 읽으시는 분들에게는 찝찝함이 남겠군요...;;; 다음에 정리해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