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지하철을 타고 다니면서 책을 읽는 편인데, 요즘 지하철을 탈 일이 별로 없다보니 책을 잘 읽지 않는다. 어제 간만에 수원에 다녀오면서 사놓고 보지 못했던 도널 오셔의 <푸앵카레의 추측>을 읽기 시작했다. 지난번에 내 블로그에서도 언급했던 전대호씨가 옮겼다.

아직 1/4 정도밖에 보지 못했지만 매우 흥미로웠다. 이렇게 재미있는 문제를 왜 지금까지 모르고 지냈던 것일까. 옛날 얘기를 꺼내면, 9년 전에 대학원 입시를 준비한다고 여름에 학교 기숙사에 남아있던 적이 있다. 그동안 잘 알지 못했던 과 동기들과(우리는 콩가루였다;;;) 공부모임을 하면서 많은 것을 새로 배울 수 있었다.

하여간 당시에 기숙사 방에 혼자 앉아서 이러저러한 잡생각을 많이 했는데 일기장에 끄적거리던 내용을 바탕으로 나름 소설이라는 것을 썼더랬다. 제목은 <표면적 인간(Homo surfacus)>으로 붙였는데 간단한 아이디어를 이미 내 블로그에 소개한 적이 있다.

생각해보면 그 표면적 인간에 관한 생각은 복소평면의 갈래선(branch cut)에서 시작되었다. 복소평면 위에서 함수를 정의하면 실수에서 정의된 것과는 다른 새로운 성질이 나타나는데, 예를 들어 w = f(z) = z^(1/2)라고 하자. z = r exp(iθ), w = ρ exp(iφ)라고 하면 ρ = r^(1/2), φ = θ/2가 얻어진다. θ에 2π를 더해도 z는 변하지 않지만 φ는 π만큼 변하여 w는 -w가 된다. r을 1로 놓으면,

z = exp(iθ) = exp(i(θ + 2π))
w = exp(iφ) ≠ exp(i(φ+ π)) = -w

이다. w = f(z)에서 z는 하나인데 w가 두 개가 되는 사태가 생긴다. 이로 인해 함수가 모호해지므로 θ의 범위를 0 이상 2π 미만으로 한정시키는 방법을 도입한다. 즉 θ는 임의의 실수값을 갖지 못하고 특정한 범위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데, 다시 말해서 θ는 z의 복소평면에서 양의 x축(즉 θ = 0인 선)을 넘지 못한다. 이 선을 갈래선이라 부른다.

우리가 경험하는 물질적 세계는 적어도 고전적인 의미에서 연속적으로 간주되곤 한다. 그런데 복소평면과 그 위에서 정의된 함수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불연속성이 뭔가 신기하게 느껴졌었다. 사실 이건 물리적 세계보다도 환상 소설에나 등장할 법한데, 이를테면 영화 <판의 미로>에서 주인공 오필리아가 판이 준 분필로 벽에 사각형을 그리면 다른 세계로 통하는 문이 열린다. 또는 <존 말코비치 되기>에서는 사무실 구석의 비밀의 문을 통해 말코비치의 머리로 들어갈 수 있다. 그런데 복소공간에서는 그런 불연속성이 매우 일반적인 속성이며, 하나의 입력에 대해 무수히 많은 출력이 가능한 이상한 성질을 보여준다.

갈래선에 관한 또다른 이미지는 3차원 공간 상에 두 개의 똑같은 모양의 2차원 면이 있어서 하나의 면으로 들어가면 다른 면으로 나오는 그림이었다. 한 면에서 다른 면으로의 이동은 순간적인 것이어서 아무리 먼 거리라고 해도 순식간에 이동할 수 있는 장치가 된다. 하지만 그 두 면에 의한 불연속성이 어떻게 연속적인 공간에서 가능해질 것인가는 의문이다.

만일 그 두 면이 방바닥에 하나, 천장에 하나 있다고 해보자. 공을 떨어뜨리면 중력에 의해 가속을 하면서 방바닥으로 떨어지다가 천장으로 위치가 이동하여 계속 떨어질 것이다. 공은 영원히 떨어지게 된다. 물론 공기와의 마찰에 의해 속도가 무한정 커질 수는 없고 언젠가는 종단속도에 도달할 것이다. 하지만 공기라고 멈춰 있기만 하겠는가. 공기도 결국 중력에 의해 지표면에 얽매여서 지구 밖으로 탈출하지 못할 뿐이다. 가벼운 공기라고 해도 한번 가속이 시작되고 그 가속이 바닥-천장의 두 면 사이를 끊임없이 움직이며 가속한다면 나중에는 꽤 엄청난 속도로 움직일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정말 그런 이동장치를 발명한다면 이 장치를 지표면에 수평으로 설치하기 전에 미리 면밀하게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사실 이 얘기는 연속적인 공간에 불연속적인 갈래선을 놓고 보자는 사고실험에 불과하고 원래 <푸앵카레의 추측>에 나오는 얘기들과는 다른 문제다. 그 책에서 다루는 내용은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의 구조가 어떤 모양일까라는 건데 세계는 연속적이라고 가정하고 출발하기 때문에 내가 위에서 소설처럼 쓴 얘기와는 상관이 없다.

그리고 애초에 갈래선은 복소공간에서 나타나는 현상 또는 장치이므로 진짜 세계(real world; real은 실수라는 뜻도 있음)에서는 애초에 설정되지 않는 문제다. 다만 복소수라는 것은 상상의 가정임에도(허수는 영어로 imaginary number다) 그것이 물리적 세계를 이해하는데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다. 하여간 흥미로운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