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형 통계물리의 주요한 연구분야 중의 하나가 흡수상전이(absorbing phase transition; APT)다. 전염병의 확산과 소멸처럼 뭔가가 생겼다가 다시 사라지거나 아니면 계속 살아남거나 하는 현상들을 가능한한 단순한 모형으로 만들어서 연구하는 거라고 보면 된다.

어떤 공간이 있다고 하자. 주로 격자를 많이 쓴다. 격자의 각 자리에는 A라는 입자가 있거나 없거나 둘 중 하나다. A는 앞서 말했듯이 전염병 바이러스일 수도 있고 천재적인 아이디어나 기술일 수도 있고 그냥 그 어떤, 나타났다가 증식하다가 점차 사라지는 그 무엇이라고 할 수도 있다.

격자 위의 어떤 A든 만일 옆 자리가 비어 있으면 빈 자리에 자신을 복제하여 A를 1개 늘린다. 또는 A가 그냥 혼자 사라지기도 한다. 이런 과정을 다음처럼 간단히 나타내자.

A → 0, A → 2A

생성과 소멸의 두 힘이 이 시스템에 작용한다고 할 수 있고 누가 이기느냐에 따라 시스템의 상태가 갈린다. 임의의 A를 선택한 후 이게 확률 1-p로 사라지거나, p의 확률로 증식한다고 하자. p가 작으면 소멸하는 경향이 세져서 모든 A가 사라지고 난 후 더이상 새로운 A가 나타날 수가 없으므로 시스템은 영원히 그 상태에 흡수되어 버린다. 그래서 '흡수상태(absorbing state)'라 부른다. 반대로 p가 크면 생성하는 경향이 강해져서 A는 계속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지만 A가 멸종되는 일은 없다. 이걸 '활동상태(active state)'라 부르자.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흡수상태와 활동상태를 나누는 특정한 p값(이걸 p_c라고 하자)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냥 p가 0에서 시작하여 커지면서 A의 밀도(A의 개수를 격자의 크기로 나눈 값; ρ_a)가 점차 커지는 게 아니라 p<p_c에서는 흡수상태, p>p_c에서는 활동상태가 된다. 이렇게 조절변수 p에 따라 두 상태 사이의 전이가 일어나므로 이를 '흡수상전이'라 부른다.

일단 흡수상태가 되면 다시 활동상태가 되는 것이 불가능하므로 흡수상태와 활동상태 사이의 미세균형(detailed balance)이 성립하지 않아 비평형 시스템이 되는 것이다.

임계점 근처에서 시스템이 보여주는 행동에 관해 알아보자. p가 조절변수라면 A의 밀도 ρ_a는 질서변수(order parameter)이다. 초기조건 즉, ρ_a(t=0)이 뭐였든 상관없이 p<p_c이면 ρ_a는 0이 되고, p>p_c이면 ρ_a는 0보다 큰 값을 갖는데 그 값은 p의 함수다. p_c 근처에서 ρ_a는 (p - p_c)^β에 비례한다고 하자.

그림 없이 말로만 하려니 힘들구나;;; 어쨌든. 격자가 모두 비어있고 A가 단 하나 있는 상태에서 위의 과정을 진행시킨다고 생각해보자. A는 언제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원래 있던 자리로부터 얼마나 멀리까지(어디까지) 증식할 수 있을까가 궁금해진다. (정말?;;) '언제까지'는 시간 방향의 상관길이 ξ_∥로, '어디까지'는 공간 방향의 상관길이 ξ_⊥로 나타낼 수 있다. 이 두 상관길이 역시 p의 함수이며 p_c 근처에서는 각각 (p - p_c)^(-ν_∥), (p - p_c)^(-ν_⊥)로 행동한다.

이렇게 소개한 세 지수 β, ν_∥, ν_⊥가 흡수상전이의 다양한 모형들의 보편성 분류를 나누는 기준이 된다. 이는 마치 평형 통계물리에서 임계점 근처의 행동을 특징짓는 임계지수들에 따라 평형 통계모형들을 여러 보편성 분류로 구분하는 것과 같다.

지금까지 말한 모형은 접촉 과정(contact process)으로 불리는데 이 모형을 포함하는 보편성 분류를 흔히 DP 분류(directed percolation class)라고 부른다. 접촉 과정은 동역학적 모형인데 스미기(percolation)는 기하학적 구조에 관한 모형이므로 이 두가지가 어떻게 서로 연관되는지를 밝혀야 한다.

일단 2차원 사각격자를 45도 돌린 걸 생각하자. 격자의 각 자리는 채워져 있거나 비워져 있거나 둘 중 하나이며 p의 확률로 채워져 있다고 하자. 스미기 문제에서 덩어리(cluster)란 채워진 자리들이 연결되어 있는 것을 가리킨다. 이러한 스미기 문제에 방향성, 이를테면 '아래방향으로만 연결'이라는 규칙을 도입한다. 방향성이 없는 덩어리의 한 자리를 잡고 그 자리에서 아래방향으로 연결된 자리들만 고려한 새로운 덩어리를 그릴 수 있다. 그런데 이 새로운 덩어리는 마치 맨 위 자리에서 시작된 접촉 과정이 시간에 따라 어떻게 변화되는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보인다.

덩어리 크기의 분포라든지 격자의 맨 위와 맨 아래를 잇는 스민 덩어리(percolating cluster)가 나타날 확률이라든지 하는 양들은 접촉 과정에 대응시킬 수 있다. 덩어리 크기는 A 하나에 시작하여 성장한 A 덩어리의 크기에 대응되고, 스민 덩어리가 나타날 확률은 A 하나에서 시작하여 끝까지 살아남을 확률, 즉 생존확률(survival probability)에 해당한다.

위의 설명에서 알 수 있는 사실은, d+1 차원에서 정의된 방향성 있는 스미기(DP)는 d 차원에서 정의된 접촉 과정과 대응되며, DP에 도입된 특정 방향은 접촉 과정의 시간 축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뭔가 더 깔끔한 문장으로 쓰고 싶지만 귀찮다는;;

어쨌든 다시 접촉 과정의 언어로 표현할 때 이미 앞에서 소개한 양들에 관한 임계지수들을 새로 정의할 수 있다. 모든 자리에 A가 하나씩 있는 상태에서 출발한 후 시간에 따른 A의 밀도 변화를 ρ_a(t)라고 하자. 이번에는 A 하나에서 시작했을 때, 시간 t까지 A들이 살아남을 생존확률 P(t), 시간 t에 A의 개수 N(t), 그리고 공간적으로 얼마나 멀리까지 증식되었는지를 나타내는 R(t)는 각각 다음과 같은 지수들과 함께 정의된다.

ρ_a(t) ~ t^(-α), P(t) ~ t^(-δ), N(t) ~ t^θ, R(t) ~ t^(1/z)

이렇게 위에서 소개한 3개의 지수에 4개의 지수를 덧붙였는데 이 지수들 사이의 눈금잡기 관계식(scaling relation)을 찾음으로써 미지수의 개수를 줄일 수 있다. 그중 시스템의 공간 차원 d가 포함된 초눈금잡기 관계식(hyperscaling relation; 제멋대로 번역했습니다;;)은 다음과 같다.

θ = d/z -2δ

평균장 어림으로 구한 값들을 대입하면 d = 4임을 알 수 있는데 이는 곧 DP 분류에 포함되는 모형들의 윗임계차원이 4라는 것을 뜻한다.

마지막으로 DP 추측이라는 걸 소개한다. 엄밀하게 증명되지 않았지만 대충 어떤 조건들을 만족하는 모형은 DP 분류에 포함될 것이다.라는 추측이다. 이 DP 추측은 1981, 1982년에 얀센(Janssen)과 그라스베르거(Grassberger)에 의해 각각 제시된 것으로 보이는데 다음과 같다.

유일한 흡수상태로 연속상전이를 하는 가까운 거리 상호작용하는 시스템들은 추가적인 대칭이 없는 이상 일반적으로 DP 보편성 분류에 포함된다. (Short-range interacting systems, exhibiting a continuous phase transition into a unique absorbing state generically belong to the universality class of directed percolation, provided they have no additional symmetries. - S. Lubeck, Int. J. Mod. Phys. B 18, 3977 (2004), p. 4017)

이 다음으로는 '추가적인 대칭'을 도입한 모형들을 소개할까 하다가 나중으로 미루겠다. 위의 모형에서는 흡수상태가 A가 하나도 없는 경우밖에 없었다. 즉 '유일한' 흡수상태였다. 그런데 다른 반응규칙을 도입하면 흡수상태의 개수가 무한히 많아질 수 있고 이런 경우에는 DP 분류가 아닌 다른 분류가 나타난다. 즉 위의 임계지수들과는 다른 지수들이 나타난다는 말이다.

그중에서도 입자의 개수가 보존되는 모형에 관한 분류로 C-DP 또는 마나 분류(conserved-DP/Manna class)가 있고 이 분류에는 마나 모래쌓기 모형의 변형(Manna), 보존되는 문턱 전달 과정(conserved threshold transfer process; CTTP), 보존되는 격자기체(conserved lattice gas; CLG) 등의 모형이 있으며 이 셋은 모형의 구체적인 규칙은 달라도 같은 임계지수가 나타나므로 같은 분류에 포함된다는 것이 밝혀져 있다.

이제서야 일단 흡수상전이 연구가 모래쌓기 모형 연구와 만나는 지점에 도달했다. 마나의 '확률적인' 모래쌓기 모형은 SOC 연구자들이 많이 연구해왔는데, 마나 모형이 모래쌓기 모형의 원조인 '결정론적인' BTW 모형과 같은 분류냐 아니냐가 여전히 명쾌하게 해결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도 얀센과 그라스베르거처럼 로씨(Rossi)와 공동연구자들이 추측을 하나 했다.

질서변수가 확산되지 않는 보존장에 커플되어 있으며 무한한 수의 흡수상태를 갖는 확률적인 모형들은 모두 같은 보편성 분류에 속한다. (all stochastic models with an infinite number of absorbing states in which the order parameter is coupled to a non-diffusive conserved field define a unique universality class. - S. Lubeck, p. 4059)

여기서 보존장은 입자 개수가 보존된다는 말이고 그게 확산하지 않는다는 말은 입자들이 제멋대로 돌아다니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런 보존장이 질서변수에 커플되어 있다는 말은 보존되는 입자의 개수가 조절변수로 작용하고 이 조절변수가 질서변수에 영향을 미친다는 말이라고 나는 이해했다. 정말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