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지난 10년 동안) 나는 sandpile model을 모래쌓기 모형으로 옮겨서 써왔다. 그런데 잠시 생각해보니 모래더미 모형이라고 하는 게 더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래알을 '쌓는' 건 모형의 일부일 뿐이고 모래알을 쌓아서 생긴 모래더미의 변화에 대한 모형이므로 그 '몸통'에 해당하는 모래더미가 모형의 이름으로 쓰여야 한다는 말이다. 하여간 앞으로 모래더미 모형으로 부르겠다. 그런데 갑자기 다른 이름으로 부르려니 어색하다는;;

모래더미 모형 중에서도 방향성 있는 모래더미 모형(directed sandpile model; DSM)은 표면성장 모형과 연관되어 이해되곤 했다. 어떤 자리의 모래알 개수가 문턱값보다 커지면(즉 불안정해지면) 이웃한 자리들로 모래알들이 전달되면서(무너지면서) 안정해지는데 모래알들이 특정한 방향의 이웃들에게만 전달되는 조건이 붙으면 DSM이 된다. 이를테면 평평한 바닥 위의 모래더미라면 동서남북 방향을 가리지 않고 모래알이 무너질 수 있지만 기울어진 바닥 위의 모래알들에는 중력이 작용하여 '특정한 방향'으로만 무너질 수 있다.

이 특정한 방향을 공간이 아니라 시간으로 이해함으로써 모래더미 모형을 표면성장 모형으로 본뜰(mapping) 수 있게 된다. 즉 d+1 차원의 방향성 있는 모래더미 모형을 d 차원 표면성장 모형으로 보자는 것이다. 확률론적 아벨리안 모래더미 모형은 이미 에드워즈-윌킨슨(Edwards-Wilkinson) 표면성장 모형으로 본떠서 이해할 수 있다는 논의가 제시되었다.

하지만 대충 그렇다는 말뿐이었고 정확한 본뜨기(exact/rigorous mapping)가 제시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모래더미 모형을 수식으로 쓰면 '문턱값'의 존재로 인해 헤비사이드 계단 함수가 포함될 수밖에 없는데 표면성장 모형에는 그런 계단 함수가 원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식으로든 어림(approximation)을 하든 해야 하는데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계단 함수를 피하는 정확한 본뜨기를 제시한 연구(Pruessner, PRE (2003))도 있기는 한데 그 과정에서 이상한 항이 생겨서 결국 또 다른 방식으로 문제가 전이되었던 것 같다.

또 머리말이 이렇게나 길어졌다. 하여간 기존의 모래더미 모형과 조금 다르지만 카다르-파리시-장 표면성장 모형(Kardar-Parisi-Zhang surface growth model; KPZ model)에 대응될 수 있는 모형이 2002년 Chun-Chung Chen (앞으로 편의상;; CCC로 쓰자) 등에 의해 제시되었고 이를 소개하려 한다. 이들은 모래가 들어있는 상자, 즉 모래상자(sandbox) 모형을 제시한다. 직육면체 모양의 박스에 모래를 담고 한쪽 옆면을 천천히 내리면 그쪽으로 모래가 흘러내리면서 기울어진 모래더미 모양이 나타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Fig. 1 in CCC, PRE 66, 061304 (2002)


옆면을 아주 천천히 내리면 위 그림처럼 가장 앞쪽 줄에서 가장 높은 자리의 모래알이 흘러내리기 시작한다. 이로 인해 모래알이 흘러내린 자리의 기울기가 문턱값보다 커지면 그 바로 뒷줄의 모래알도 흘러내릴 것이고 이러한 연쇄반응으로 하나의 사태가 만들어진다. 이 사태는 다시 모래더미가 안정해질 때까지 계속되다 끝나는데, 그러면 다시 옆면을 아주 조금 내려서 또다른 위치에서 또다른 사태가 시작된다...

이런 규칙을 수식으로 쓰면 KPZ 방정식과 매우 비슷한 모양이 되고, 임계 행동(critical behavior)만 보면 결국 KPZ 방정식과 똑같은 결과(즉 똑같은 임계지수)를 보여준다. 모래더미 모형을 KPZ 표면성장 모형에 본뜬 것으로는 처음인 연구결과인데 생각보다 주목을 받지 못한 것 같다. 그런데 처음부터 KPZ처럼 만들려고 만든 모형인 것 같기도 해서 KPZ와 다른 결과가 나오면 오히려 이상한 상황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수식이 없으니 허전하다는;;; 위 모래상자 모형은 2차원 격자 위에서 정의된다. 각 자리를 (x,y)라 하면 그 자리에서 모래더미의 높이는 h(x,y)라고 하자. 위 그림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옆면의 바로 뒤, 즉 맨 앞줄은 y=0으로 표현된다. x는 가로방향 위치다. 자리 (x,y)에서의 기울기는 h(x,y) - min[h(x-1,y-1), h(x+1,y-1)] 로 정의되는데, 즉 바로 앞쪽 열의 이웃한 두 자리의 높이 중 작은 쪽과의 차이;;이다. 이 기울기가 어떤 문턱값 s_c보다 커지면 모래알이 굴러내린다는 거다. 그 '굴러내리기(무너지기)' 규칙은 다음과 같다.

h(x,y) → min[h(x-1,y-1), h(x+1,y-1)] + η

여기서 η는 0과 s_c 사이의 랜덤한 값이며 무너지기가 일어날 때마다 랜덤하게 주어진다. 위 규칙을 방정식 형태로 바꾸고 앞서 말했듯이 y를 '공간'이 아니라 '시간'으로 이해하면 그게 바로 KPZ 방정식과 비슷한 모양이 된다. 그 다음부터는 그냥 가면 된다.

처음 모래상자 모형이 제시되었을 때(CCC and M. den Nijs, PRE 65, 031309 (2002); 66, 011306 (2002)) h는 연속적인 값이었는데 나중에 나온 논문(CCC, PRE 66, 061304 (2002))에서 h를 정수로 하고, s_c는 1로 두고, η도 0 또는 1만 갖도록 한 모형이 제시된다. 이때 변수를 하나 더 도입하는데 η가 0일 확률을 1-p, 1일 확률을 p로 한 것이다. p가 1인 경우에는 사태 분포의 임계지수를 정확히 구할 수도 있다. 더 중요한 건 p에도 어떤 임계점이 존재해서 그 점에서 방향성 있는 스미기의 거칠기 전이(directed percolation roughening transition;;;)가 일어난다는 거다.

점점 설명하기도 귀찮아지고;; 나도 더 공부가 필요하여;; 여기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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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C의 모래상자 모형 페이지에 자바 애플릿 등이 있다는 것을 발견. (2008. 4. 30. 0: 48 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