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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한국어로 쓰고나니 영어로도 써야할 것 같은 압박을 느꼈다. RG(renormalization group)를 '재규격화 군'으로 쓰면 영어로 쓰지 않아도 되었을까? 모르겠다. Jensen의 <Self-Organized Criticality> 공부가 거의 끝나는 중인데, RG를 이용하여 SOC를 푸는 내용이 대미를 장식하고 있다.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간단하다. 크기가 N인 1차원 격자 위의 모래쌓기 모형을 떠올리자. 블록의 크기를 2라고 하면 한 번 되틀맞춤 변환을 한 후의 시스템 크기는 N/2가 된다. 즉 이웃한 두 자리(site) 씩 짝을 지어 거칠게 본다(coarse-graining)는 말이다. 원래 시스템에서 한 자리의 모래알들의 높이가 문턱값을 넘어 이웃한 자리들로 무너지면서(toppling) 그것들의 연쇄반응으로 사태가 일어났다면, 변환 후의 시스템에서는 모래알이 블록의 경계를 넘어가는 경우만 무너졌다고 쳐준다.

원래 시스템에서는 한 자리의 모래알들이 무너지면서 양 옆 자리로 이동했다고 하더라도 변환 후에는 한쪽으로만 이동할 수도 있다. 그래서 한 자리에서 무너진 후 이웃한 자리 중 한 군데로만 모래알이 이동할 확률을 p1, 이웃한 자리 중 두 군데로 이동할 확률을 p2로 하여 이들을 조절변수로 두고 이 변수들의 RG 변환에 따른 관계식을 만들어 고정점(fixed point)을 찾고 RG 변환식의 선형 안정성 분석을 하여 관련 지수들의 값도 구할 수 있다.

2차원 격자의 경우 Manna가 제시한 두 상태 모형(two state model)과 모래쌓기 모형의 원조인 BTW 모형(Bak, Tang, Wiesenfeld의 이름의 첫글자를 따서 붙임)의 규칙은 다르지만 RG 변환의 고정점이 같아서 같은 보편성 분류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다.

더 흥미로운 것은 무너지는 과정(toppling)에서 모래알이 사라지는 경우, 또는 에너지가 시스템 밖으로 손실되는 경우도 위와 같은 방식으로 풀어낼 수 있다는 점이다. 에너지 손실을 여러 방법을 통해 도입할 수 있지만 가장 깔끔한 방법으로는 무너질 때마다 γ의 확률로 이웃 자리로 전달되어야 할 에너지가 모두 손실되도록 한다. 그리고 RG 변환식에 이 조절변수 γ가 포함된다. 즉 γ도 RG 변환에 따라 변한다.

고정점을 구하면 두 가지 경우가 있는데 γ = 0일 때(밀개; repeller)와 γ = 1일 때(끌개; attractor)이다. 앞의 경우는 에너지 손실이 전혀 없는 경우와 같고, 뒤의 경우는 모든 에너지가 손실되는 경우다. 뒤의 경우는 격자의 각 자리 사이의 상호작용이 전혀 없으므로 '사태'를 정의할 수 없는 뻔한(trivial) 결과다. γ = 0인 경우의 고정점이 밀개라는 것은 처음부터 에너지 손실이 없는 모형을 제외하면 임계현상이 나타나지 않음을 의미한다. 즉 무너지기 과정에서 에너지가 보존되는 경우(국소적 에너지 보존이라 부른다)에서만 임계현상이 나타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이 책이 씌어지고 나올 때(1998년)만 해도 아직 국소적 에너지 보존이 임계현상의 필요조건이냐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었고 지금도 그렇다. 그래서 이 책 안에서도 입장이 확실히 정리되지 않았다. 그런데 필요조건이 아니라는 주장의 근거는 여전히 모호한데 반해서 필요조건이라는 주장은 여러 접근 방법을 통해 일관되는 편이라 필요조건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

간단히 쓰려고 했는데 또 길어졌다. 그런데 자꾸 옆에서 모기가 괴롭혀서 쓰는 와중에 모기 잡으러 다닌다고 정신이 조금 없었다. 끝.

* 내 블로그의 연관되는 글들:
[1] 모래쌓기 모형과 지진모형의 차이(2007. 4. 5.)
[2] 비보존 시스템의 임계현상(2007. 5.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