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멋대로 한국어로 옮긴, 초눈금잡기 관계식(hyperscaling relation)에 대해 간단히 쓰려고 한다. 연속 상전이에서 나타나는 임계현상은 임계점 근처에서 여러 변수들 사이의 거듭제곱 꼴 관계(power-law, 즉 y~x^a)로 기술된다. 그렇다보니 임계지수(y~x^a의 a)가 시스템을 특징짓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리고 여러 변수들 사이의 관계는 각 관계에 관한 임계지수들로 표현되고 임계지수들 사이의 관계식이 존재한다.

즉 여러 변수들 사이의 관계'들'이 독립적이지 않고 상호 연관되어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임계지수가 n개여도 눈금잡기 관계식(임계지수들을 연결시키는 관계식)이 n-2개이면 이 임계현상은 2개의 독립된 지수들만으로 분류될 수 있다. 이를 이해하는 한 가지 방법은 우리가 관찰하고 기술하는 임계현상의 여러 측면들(즉 여러 변수들)은 사실 그 중 한 두 가지 측면(즉 한 두 가지 변수)만으로도 완전히 기술할 수 있으며 나머지는 같은 그림을 말 그대로 여러 측면에서 본 게 아닐까 하는 거다. '나는 성격이 나쁘다'를 '나는 성격이 더럽다'거나 '나는 성격이 까칠하다'라고 기술한 것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좋은 예는 아닌 듯;;;)

그런 눈금잡기 관계식은 사실 눈금잡기 부등식으로 먼저 알려져 있었다. 예를 들어 세 개의 임계지수(a,b,c) 사이의 관계식이 a + b = 2c 와 같은 등식이 아니라 a + b ≥ 2c 와 같은 부등식이었다는 말이다. 그러다가 되틀맞춤무리이론(RG;;;)이 통계역학에 도입되면서 임계지수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모호했던 점들이 말끔히(?) 해소되었다.고 읽은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 눈금잡기 관계식 중에 초눈금잡기 관계식이라는 게 있다. 바로 시스템의 공간 차원 d가 관계식에 포함되어 있는 걸 가리킨다. 그런데 이 d는 시스템의 조절변수(주로 온도)와 상관길이 사이의 관계에 관한 지수인 ν와의 곱으로 관계식에 나타난다. 일단 d가 임계지수들을 결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왜 그런가?라고 물어볼 수 있다. 시스템의 공간차원은 곧 시스템을 이루는 부분들 사이의 상호작용에 중요한 제약을 가한다.

일반적인 d차원의 사각격자를 생각하면 각 격자점의 이웃수는 2d가 되어 각 점의 이웃수가 d에 의존하게 된다. 이게 좀 애매한데, 사각격자가 아니라 삼각격자면 개수가 또 달라지고 육각격자여도 그렇다. 하지만 공간차원만 같으면 삼각이든 사각이든 중요하지 않다. 앞에서는 공간차원이 이웃수에 영향을 미치므로 중요하다고 해놓고 뒤에 와서는 삼각이든 사각이든 이웃수는 중요하지 않다고 하니 헷갈릴 수 있다.

그래서 단순히 '이웃수' 개념으로 이 상황을 바라봐서는 안 될 것 같다. 그런데 이건 시스템의 요소들이 '격자' 위에 놓여있다고 가정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이지 본질적인 문제는 아니다. 격자가 아니라 연속적인 위치에 놓여 있는 요소들이 상호작용하는 그림을 그려보면 이웃'수'가 아니라 이웃'영역'이라는 개념으로 이해하는 게 더 정확할 것 같다.

이걸 염두에 두고...라기보다는 하여간 공간차원은 요소 사이의 상호작용의 범위/영역에 제약을 가하므로 중요하다라는 걸 생각하고 원래 얘기로 돌아가자. 그래서 왜 눈금잡기 관계식에 공간차원이 포함되는가. 초눈금잡기 관계식 2 - α = dν 를 보자. α와 ν는 각각 시스템의 비열(specific heat)과 상관길이가 온도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를 보여주는 지수들이다.

간단히 말해서 비열은 시스템의 부피(즉 길이의 d제곱)에 비례하고 상관길이는 시스템의 부피와 무관하게 '길이'라는 차원이므로 이 두 양을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공간차원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사실 더 흥미로운 점은 많은 임계현상에서 이 초눈금잡기 관계식이 특정한 공간차원 이상일 경우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이징 스핀 모형(Ising spin model)의 경우 d ≥ 4인 시스템에서 나타나는 임계지수들이 d = 4 로 고정한 눈금잡기 관계식들을 만족시킨다. 즉 d가 일단 4 이상이기만 하면 d가 5든 6이든 100이든, 심지어 무한대이든 모두 똑같은 임계현상을 보인다는 말이다. 이 얘기도 윗임계차원(upper critical dimension)에 관한 글에서 한 적이 있는데, 하여간 얘기가 길어졌다. 여기까지.